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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8 17:04 수정 : 2005.02.18 17:04

“즐겨보세요, 자연스런 불편한 공간”

작품 그 자체는 아니어도 예술가에게 작품 못잖게 소중한 창조 과정의 부산물이 있다. 사진작가에게는 필름이, 소설가에게는 원고가 그렇다. 건축가에게는? 모형이 바로 그런 물건이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건물이 아니라 모형을 통해 처음으로 입체화된다. 그러나 모형은 아무리 정성껏 만든다해도 그저 과정의 산물일뿐 그 자체가 결과는 되지 못한다. 완성되면 바로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 건축 모형의 운명이다. 그렇게 한 번 쓰고 난 모형을 부수는 것은 건축가에게는 고통스런 순간일 수 밖에 없다. 평범한 가재도구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게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고민속에서 쥐어짜낸 디자인의 산물을, 행여 부서질까 공들여 만든 모형을 우지끈 밟아버려야 하는 심정은 건축가가 아니면 모른다.

우리 건축계를 대표하는 중견 건축가이자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유명한 이일훈(53)씨도 모형을 부수기전 상념이 물결쳤다. 사무실을 옮기면서 어쩔 수 없이 그동안 보관해온 모형들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눈 딱 감고 밟기 직전, ‘사진으로 남기자’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모형 하나하나를 사진 찍고 부수기를 반나절, 모형들은 사라지고 사진들만 남았다.

이사를 마친 뒤 이씨는 사진속 모형 하나하나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구상했는지, 어떤 점에서 미흡했는지, 다시 짓는다면 어떻게 지을지…, 자기 건축에 대한 ‘복기’이자 ‘반성’, 그리고 새로운 ‘구상’을 더해 건축일기처럼 써내려갔다. 그렇게 1년쯤 모형에 대한 글을 썼는데, 우연히 이 이야기를 들은 출판사가 책으로 내자고 제안해왔다. 이씨가 대중적 건축이야기책인 <모형 속을 걷다>를 펴내게 된 사연이다.

책에서 이씨는 모형을 통해 건축에 대한 개념과 상념을 편안하고 쉽게 대화하듯 들려준다. 그가 들려주는 건축이야기에는 까다로운 기술용어나 생소한 전문용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리 사는 이야기일뿐이다. 이씨는 특유의 건축론 ‘채나눔론’을 펼치며 자연스럽게 우리 건축문화, 그리고 ‘집’과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록 이끈다. 그러면서 건축과 생활방식에 대한 통념을 정반대로 바꿔야한다고 역설한다. 환경을 고려하는 주거방식과 건축이 어떠해야할지 되짚어보면 집과 주거방식을 전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채’란 사랑채, 안채라고 할 때 쓰는 채를 말합니다. 집을 한덩어리가 아니라 웬만하면 여러 채로 나누자, 작을수록 더 나누자는 겁니다. 그래야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그리고 ‘늘려 살기’가 가능해집니다.”

이씨는 오로지 편함만을 추구하는 흐름과는 반대로 ‘의도적이고 필요한 불편함’을 즐겨야하며, 건축물은 ‘걷기’와 ‘움직이기’같은 자연스런 불편함을 제공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동선이 무조건 짧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공간속 이동거리를 길게 늘려야하고, 모든 것을 내부화하는 요즘 건축과 달리 외부 자연환경과 맞닿는 공간을 확대해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공존하는 형태로 집을 짓자고 강조한다.


“건축가들은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듯 기술적으로 집을 짓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 사는 방식에 대해서도 몰두하고 사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는 방식을 의문하고 제안하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란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채 나눔’은 그런 고민끝에 뽑아낸 제 나름의 철학이자 제가 제안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솔/9500원.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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