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8 17:31
수정 : 2005.02.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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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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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만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과학기술의 본질에 접근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보는 대단히 전문화한데다 통제되어서 우리는 보이는 과학만 보고, 주어진 매뉴얼대로만 기술을 이용할 뿐이다. 이는 한편으로 ‘문화지체’를 부추긴다. 문화지체는 다시금 이용 주체가 과학기술의 실체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미국 사회학자인 윌리엄 오그번이 〈사회변동론〉에서 언급한 문화지체는 과학, 기술 따위가 발전하는 속도를 윤리, 법, 종교 등 비물질적인 것이 따르지 못하는 현상을 이른다. 오그번은 이것이 야기할 사회 부조화 현상을 염려했다.
부조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업화한 과학기술이 노골적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일일 터다. 제 몸을 마루타 삼아 패스트푸드의 감춰진 유해성을 들춘 미국 영화 〈슈퍼사이즈 미〉는 이에 대한 극단의 반발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패스트푸드는 순수 한우, 호밀 따위를 원료로 해 참살이(웰빙), 건강 개념에 부합한 새 상품을 내놓는다고 선전한다. 물론 이는 언구럭일 뿐 고지방, 고칼로리, 고염분이라는 기본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영양소는 없이 열량만 높은 ‘정크푸드’라는 본질도 그대로다. 외려 향신료와 인공 조미료가 발전을 거듭하며 대중의 입맛을 더욱 자극적으로 길들일 뿐이다. 인류의 사망 원인 가운데 1, 3위가 고혈압과 콜레스테롤 과다이고 모두 지방식료품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아이들이 원래부터 패스트푸드를 좋아할 것이란 것도 허위에 불과하다.
기실 과학기술은 욕망의 집합체이다. 8억5천만명이 절대빈곤에 놓여 있는 지구에서 유전자조작 식품이 꿈꾸어지는 건 당연하고, 수도권의 미세먼지가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가운데 최하위급(71㎍/㎥)인 우리나라에 첨단의 공기청정기는 더욱 더 갈구된다. 문제는 칸트의 정언명법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가 “할 수 있다. 그래서 해야 한다”로 전복되고 강조되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즉, 어느 순간부터 기술이 직접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거나 다스리는 사회인 것이다.
인간은 오늘도 욕망하고 그 가능성을 점친다. 무균 돼지로부터 장기를 이식하는 게 가능할까. 배아세포 복제로 무한의 장기를 제공받을 수 있을까. 사고하는 로봇이 파업을 하진 않을까. 윤리적 선택을 포함한 수많은 난제를 앞두고 첨단과학의 명암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 〈사람을 위한 과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과학교양서다. 오랫동안 과학 분야를 맡아온 〈한겨레21〉 김수병 기자가 객관적 시각과 대중적 글쓰기로 삶과 과학의 어울림을 전망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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