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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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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지식인의 아지트 ‘다방’
70년대는 음악감상 대중문화의 산실
커피숍 대체되면서 ‘나홀로족’의 사색공간으로
유리창 너머 도시에게 말을 건다
생활 속의 문화사회학
“해방이 되면서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멀리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들이 돌아왔고 일본 경찰에 쫓겨 숨어 다니던 사람들이며, 세상이 싫어서 은거하던 사람들까지도 다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울 거리에는 이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가 더욱 필요했고, 따라서 명동을 비롯해서 충무로·소공동·종로 등 번화가에 다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준만, 오두진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중에서)
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카페는 지성사의 현장으로서 학문과 예술을 다양하게 발흥시킨 거점이었다. 한국에서도 다방은 지식인 룸펜들의 아지트이면서 새로운 문화가 움트는 산실이기도 했다. 1950~60년대에 명동 일대의 몇몇 다방들에서는 많은 문인들이 모여 들여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만남과 토론이 이어갔다. 충무로가 영화산업의 일번지가 된 것도 전화가 귀했던 시절 영화인들이 그 일대의 다방들을 사무실로 사용한데서 연유한다. 70년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청년문화가 발흥할 무렵 다방은 음악 감상실과 함께 세련된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었다. 다방 한 쪽에 뮤직 박스가 있고, 그 안에서 디제이(DJ)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음악과 사연을 소개하던 모습은 기성세대에게 아련한 추억이다.
80년대에 접어들어 대학가에서는 다방이 하나 둘씩 ‘커피숍’으로 대체되었다. 이제 다방은 대도시 변두리나 지방의 소도시나 농어촌에 가 보면 약간 남아 있는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음악이 흐르지 않고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이드신 아저씨들이 주된 손님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담이 단골 고객을 직접 맞이하면서 옆에 앉아 차를 함께 마심으로써 매상을 올리는 다방이 있었다. 그 뒤로 이른바 티켓 다방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제 ‘다방’ 하면 ‘아가씨’가 연상될 정도다.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다방’을 검색하면 19살 미만은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다른 한편 커피숍은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꾸준하게 변용되어 왔다. 80년대 꾸준하게 늘어난 커피숍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안락한 의자 등으로 손님들을 끌었다. 최근 커피숍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해지고 있다. 오랜 전통의 북 카페와 사주카페 이외에도, 갤러리형 카페, 족욕 카페, 산소 카페, 맛사지 카페 등이 그것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카페 선택이 달라지는데 연인끼리는 다소 후미진 구석이 있고 테이블끼리 멀리 떨어져 있으며 소파가 있는 곳으로 주로 간다. 그에 비해 동성 친구들끼리는 좀 더 환하고 개방적이고 모던한 공간을 선호하고, 여자들끼리는 불필요한 남성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여성전용 카페를 찾기도 한다.
지금 커피숍의 대세를 이루는 것은 커피 전문 브랜드들이다. 스타벅스(‘별 다방’이라고도 불린다)의 성공으로 비슷한 형태의 커피점들이 속속 출현하였다. 커피빈(‘콩 다방’이라는 별명이 있다), 파스구찌, 로즈버드, 할리스…. 커피 전문점이라고 하지만 거기에서는 커피 말고도 쥬스나 쿠키 등 다양한 메뉴를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손님이 직접 음식을 나르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 커피 값을 내는 경우가 많다. 연장자에게 ‘심부름’을 시키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돈을 받아서 가기도 뭐하기 때문에 결국 후배나 부하 직원들이 음료를 주문하고 배달하면서 지불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브랜드 커피숍들의 중요한 공통점은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것이다. 바야흐로 모바일 커피의 시대다. 커피를 들고 마시면서 걸어가는 것은 이제 하나의 패션으로 정착하고 있다. 만일 멋진 옷을 입고 나들이하면서 그냥 자판기 커피를 들고 다니면 스타일 구긴다. 그 옷차림에는 브랜드 커피숍의 마크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큼직한 종이컵이 걸맞은 것이다. 그러나 길거리를 다니면서 음식을 먹는 것은 아직도 불편하거나 생소한 모양이다. 아니면 우리에게는 커피 그 자체보다도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스타벅스의 경우 유독 한국에서만은 매장을 40평 이상으로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커피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꽤 많다. 하루 종일 책을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는 손님도 많다. 예전 같으면 다방에 혼자서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왠지 청승맞아 보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련되어 보인다. 음식점에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처량하지만, 커피숍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독서에 몰두하는 모습은 우아하다. 그 경험은 디지털 카메라에 담겨 미니 홈피에 종종 올라간다. 유유자적하게 커피와 음악을 음미하고 고급 케익을 먹는 즐거움이 과시되고 선망되면서 커피숍은 자신의 산뜻한 이미지를 연출해보는 세트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혼자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대개 창가에 있는 일인용 자리를 잡는다. 거기에서 도시의 뭇 풍경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행인들의 모습이나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공상을 따라다닌다. 파리의 카페를 무척 사랑했던 작가 헤밍웨이는 몇몇 단골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글을 쓰고 세상을 구경하곤 했다. 그의 소설 <파리는 축제다>의 한 대목을 펼쳐보자. ‘시간을 잊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바라본다. 파리는 문을 활짝 열고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날마다 큰 길을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각양각색의 군중들을 사열하고 있다. 모든 인생의 모습들이 거기에 총 망라되어 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며 자신을 위해 천 가지 이야기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오늘 한번 커피숍에서 작가가 되어 보자. 시인의 언어로 도시에게 말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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