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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라금/이화여대 여성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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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허무는 ‘성기성물’ 모성적 가치로 확대 해석
만만치않은 논쟁적 시도지만 묘한 ‘해방감’ 줘
나는 이렇게 읽었다/정대현 지음 <다원주의 시대와 대안적 가치: 한 인간론의 여성주의적 기초>
다원주의와 함께 대안적 가치를 논하는 것이 간단할 리 없다. 책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논쟁적 주제들을 다루는 정대현 교수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힘에 버거운 일이다. 우선 <다원주의 시대와 대안적 가치>라는 책 제목을 읽는 순간, 묵혀 내려오고 있는 예상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다원주의’가 해체를 긍정한다면, ‘대안’은 구성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차이의 인정을 통해 피하고자 했던 억압을 대안적 담론은 다시 생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원주의가 공동체 성원들이 지향하는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상호 존중 이외에 또 다른 목적적 가치를 상정하려는 것은 개념적 모순이 아닌가?
구성보다 해체의 필요성이 주목되고 있는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서 상호존중과 공유의 가치,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철학자는 어떻게 이 의문들에 답할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언어 분석 철학자답게 상당부분 개념적 구분을 통해 길을 제시하는 듯하다. 예컨대, 그의 ‘이론적 다원주의’와 ‘담론적 다원주의’의 구분을 따라가 본다.
‘이론적 다원주의’가 하나의 진리에 수렴할 것을 목표하는 체계에서의 다원주의라면, ‘담론적 다원주의’는 삶의 구체적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다원주의이다. 전자가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이른바 “통약불가능한 패러다임들” 간의 문제라면, 후자는 인간 생활에 토대한 소통가능한 다원성이다. 이론과 달리, 인간은 자연종으로서 공유하는 생활양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믿음이 이 구분을 뒤받치고 있다. 이론적 다원주의가 하나의 진리 앞에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경합해야 하는 경쟁적 관계를 형성한다면, 담론적 다원주의는 공동의 생활양식에 의해 규제되는 실천 공유의 다원주의인 셈이다.
이처럼, 저자는 해체와 구성 간의 긴장이 많은 부분 개념적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천적 맥락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공통의 지향적 가치를 모색하는 것 사이에 모순은 없다. 남은 일은 다원성 속에서 공유해야 할 대안적 가치를 찾는 것뿐이다.
이 책은 대안적 가치의 후보로 ‘성기성물(成己成物)’을 고려하고 있다. 나를 이룸과 만물을 이룸이 맞물려 있음을 뜻하는 ‘성기성물’을 저자가 사회적 대립과 반목을 조정하는 정치적 가치와는 구별하고 있는 데서 확인되듯, 그것은 제도적 규범이라기보다는 윤리적 질서를 지향하는 가치이다. 또한 생명을 길러내는 모성적 실천양식에서 그 의미를 구체화함으로써 저자는 다원주의 시대와 여성주의적 가치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래된 유교적 덕목인 ‘성기성물’을 탈가부장적 맥락에서 행해지는 모성적 실천과 연결시켜 재해석하자는 그의 논의는 매우 논쟁적일 수 있다. 언어적 의미 질서 속에서 모성이, 저자가 희망하듯 그렇게 쉽게,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개념적으로 분리될 수 있을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에서 억압 대신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대안 담론을 새로운 억압 질서를 재생산하는 거대 담론과 등치시키면서, 다양한 담론의 형성과 그 정치적 효과를 억압했던 편향된 해체론적 담론 전유의 족쇄를 그가 과감히 벗어 던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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