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연습장 (26)
부서지기 쉬운 것은 쪄야 한다│삶다 : 찌다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에서 어울리는 말을 고르시오. 예전에 소풍 갈 땐 (삶은/찐) 달걀이 인기였는데. 어디서든 아랫사람 하나만 잘 (삶으면/찌면) 지내기가 편하다. (삶는/찌는) 듯한 무더위에 길을 나섰다. [풀이]조리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삶다’와 ‘찌다’는 꽤 뚜렷이 구별되는 편이다. ‘삶다’는 날음식을 물에 넣고 끓여서 익히는 것이고, ‘찌다’는 음식을 뜨거운 김으로 익히거나 데우는 것이다. ‘삶다’는 날재료를 물에 담가야 하는 반면, ‘찌다’는 꼭 날재료가 아닐 수 있고 물에 담그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일상생활에서 주로 삶는 음식에는 달걀, 밤, 내장, 콩이나 팥, 조개, 국수, 라면 등이 있다. 이 재료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달걀, 밤, 조개같이 껍질이 있거나, 콩처럼 단단하고 국수처럼 질겨서 물에 담가 실컷 끓여도 내용물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찌는 음식으로는 감자, 생선, 찹쌀, 가지, 양배추, 호박잎, 떡, 약밥, 만두, 찐빵, 식은 밥을 들 수 있다. 대체로 곡류나 채소이고, 일차 조리를 거친 중간재료가 대부분이다. 재료에 따라서는 콩이나 국수처럼 반드시 삶아야 하는 것, 그리고 약밥이나 찐방처럼 반드시 쪄야 하는 것이 있다. ‘삶다’는 형태가 손상되지 않을 만한 재료를 쓰거나, 형태가 달라지거나 다소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끓는 물로 내용물을 부드럽게 해서 먹을 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음식 외에 어떤 것을 삶는지 생각해보면 ‘삶다’가 내용물에 철저하게 작용을 가하는 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속옷, 행주, 기저귀, 젖병 같은 것은 삶아야만 깨끗해지고 소독도 된다. ‘삶다’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이 뜻이 넓어져, 사람을 달래거나 꾀어서 자기 말을 잘 듣게 만드는 일을 ‘삶는다’고 한다. 그래서 “문지기를 삶아놓았으니 그 집 드나들기가 쉬울 거다”에서처럼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요리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와 거의 같은 뜻으로, ‘삶다’ 앞에 ‘굽다’를 덧붙여 ‘구워 삶는다’는 표현도 흔히 쓰인다. ‘굽다’는 ‘삶다’보다 내용물을 훨씬 더 강렬하게 익히고 변형시키는 조리 방법이므로, “문지기를 구워 삶았다”면 마음대로 그 집을 드나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찌다’는 형태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국물을 내지 않기 위한 가열 방법이다. 그래서 물에 담갔을 때 형태나 속성에 변화가 생기거나 국물이 나올 우려가 있는 것은 반드시 ‘쪄야’ 한다. 음식이 아닌데도 흔히 ‘찐다’고 하는 것은 날씨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는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뜨거운 김을 쐬는 것처럼 덥다는 뜻이다. 때로 “무더위가 거리를 삶는다” 같은 표현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상적 어법이라기보다는 문학적 묘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약] 삶다: 물에 담가서 가열 |날 음식을 끓여서 익힐 때에만 쓰임 |재료의 형태가 변할 수도 있음 찌다: 물에 담그지 않고 김으로 가열 |한번 익혔던 음식을 데우는 경우도 있음 |재료의 형태에 손상이 없음 [답] 삶은, 삶으면, 찌는 김경원/문학박사·한국근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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