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인세계’ 월드컵 앞두고 축구 특집
佛 카티 라팽, 이근배 등 국내외 시 10편 게재
대한민국을 붉은색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고, 엄숙한 태극기를 하나의 패션으로 만들어 준 것은 정치도 경제도 문학도 아니었다. 그것은 축구였다.
"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이근배,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중).
축구는 이처럼 우리 삶을 성찰하는 시가 되었다. 계간 '시인세계'(발행인 김종해) 여름호가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꾸민 특집 '시의 문법, 축구의 문법'은 축구에 대한 세계인의 교감과 시적 관심을 압축하고 있다. 이근배 이성부 오탁번 문정희 이장욱 등 한국시인 다섯 명을 비롯해 프랑스, 멕시코, 아르헨티나, 일본, 독일 시인들의 축구에 관한 시를 실었다. 축구와 문학의 상관관계를 다룬 시인 장석주 배문성, 문화평론가이자 축구해설가 정윤수의 글도 실렸다.
무엇보다 외국 시인들이 보내온 시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중의 서사시로, 삶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놀이로, 유년의 원형적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여류시인 카티 라팽은 "날개 없이/45분간의 비상/눈물 없이/45분간의 번민/태양이 이글거리는 시간 수평선들 휘감기고/무수한 입술의 인간 육신이 빚어낸 듯/관중석에선 고통도 낙담의 두려움도 들려오지 않는다/적도 형제도 포옹케 하는/최후 영웅의 무르익음"('공 이야기' 중)이라며 축구경기를 인생의 서사시로 엮어낸다.
멕시코 시인 호세 루이스 킨테로 카리요는 "시는 구르는, 잔디 위에/인생을 굴리는 게임 같은 것"이라거나 "시는 바로 완곡어법 없이 굴러가는/법을 배우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우리 모두로 하여금/올림픽의 성취를 느끼게 하는 것"('축구하는 시' 중)이라며 축구를 시로 승화시켰다.
일본 시인 혼다 히사시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상한 과일처럼/풀밭에서 굴러온 공은/분명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중략)/언제나 머리 위에 있어/스스로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는 것/우리들이, 진정 발로 차고 싶었던 건/황금의 태양이 아니었을까"('로스 타임' 중)라며 축구를 통해 유년시절의 꿈을 추억한다. 독일 시인 라인하르트 움바하는 "멍청한 공이 회전을 시작합니다 기류를 뚫고요./우린 모르겠습니다, 그 모두가 어디에서 왔는지./마냥 불가해합니다, 우주보다 더요/그런데 갑자기 수천 명이 욕하는 소리 들려 옵니다,/움짓움짓 골기퍼 뒤에서 놓인 것을요, 공요"('멍청한 긴 패스' 중)라며 자살골을 넣은 선수가 야유를 받는 상황을 풍자적 어법으로 그렸다. 축구에 대한 시와 노래가 들어 있는 시집 '공의 업적'을 낸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축구해설자이자 시인 월터 사아베드라는 "결코 클럽의 미친 서포터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뒤에서 태클당한 동료 때문에 악다구니를 써보지 않았다면 연대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중략)/결코 경기장에서 '죽어라 검둥이'라는 외침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니"('절대로' 중)라며 공을 차보지 않고는 인생을 알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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