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8 18:50
수정 : 2006.05.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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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성공회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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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만난 사회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에 관한 검찰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소한 몇 가지 사항을 빼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한 데 불과한, 예상되었던 결과다. 그러나 황 박사의 열혈 지지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여전히 납득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작년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른바 ‘황우석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윤리위반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대다수 일반 시민들이 황 교수를 지지했고, 일부 시민들은 논문조작이 사실로 드러난 후에도 음모이론까지 들먹이며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지에 대해 ‘인질효과’다, 민족주의적 정서의 발로다, 등과 같은 다양한 해석들이 그간 여러 토론회에서 제기된 바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 가설은, 우리나라 시민들이 생명공학의 발전(더 넓게는 생명현상에 대한 개입과 조작)이 야기할 수 있는 사회·윤리적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게끔, 또 생명공학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정도로만 보게끔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쉬운 예로 독일에서 큰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후 국내로 들어온 ‘인체의 신비’전을 보자. 그간 단일 전시회로서는 기록적인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교육적’인 목적에서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벗겨진 시체’들을 관람했지만, 내가 과문해서인지 아직 ‘전시물’에 불쾌감을 느끼고 주최측에 항의한 관람객이 있었다는 얘긴 못 들어봤다. 아인슈타인의 뇌 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길게 줄을 늘어서서 손톱만한 뇌 조각을 관람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작 아인슈타인 자신은 생전에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전시하거나 연구 대상으로 삼도록 결코 허락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렇게 보면 ‘황우석 사태’ 초기에 난자제공의 윤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다수 시민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도 썩 놀라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복제기술이 가져올 가상의 ‘국익’이나 국위 선양에 비해 난자 기증자의 ‘인지된 동의(informed consent)’ 여부는 사소한 문제로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렇게 결론지어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과배란 증후군으로 고생한 여성들은 아예 주목조차 못받고 묻혀 버릴 뻔했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그간 생명공학에 관한 장밋빛 미래만을 일방적으로 선전해 온 정부와 언론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산적한 문제를 덮어두고 다시금 복제연구에 박차를 가하려고 하는 지금, 과연 우리는 제대로 된 반성 위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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