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연습장 (29)·끝
건넨 것은 돌아오게 되어 있다│주다 : 건네다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말을 고르시오. 딸아이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용돈을 (주기로|건네기로) 약속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돈을 (주었지만|건넸지만) 노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젊은 사서는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태연히 (주는|건네는) 것이었다. [풀이]한국어에서 ‘주다’만큼 쓰임새가 다양한 낱말도 드물다. 물건, 돈, 먹을 것, 일, 권리, 지위, 도움, 고통, 창피, 주의, 연락, 점수, 상, 벌, 시간, 정, 감동, 겁, 세례, 힘, 변화, 눈치 등등, ‘주다’의 대상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한편 ‘건네다’의 쓰임새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건너다’에서 나온 사동사라는 점에 충실하게, ‘건너가게 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다. 이럴 때는 “사공이 나룻배로 아이를 건네주었다”처럼 ‘건네주다’의 꼴로 쓰이는 일이 많다. 또 한 가지는 “말을 건넨다” “인사를 건넨다” 같은 경우다. 마지막은 가장 일상적인 용법으로, “물건을 건넨다” “돈을 건넨다” 등에서 보듯이 ‘무언가를 남에게 넘겨준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다(이 글에서는 이 용법에 한정해서 ‘주다’와 비교하기로 한다). ‘주다’나 ‘건네다’나 뭔가가 다른 사람한테 건너가는 일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두 낱말과 어울리는 대상들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다. 예를 들어, 돈이 건너갈 때는 “돈을 준다”고 하지만 말이 건너갈 때는 “말을 건넨다”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말 중에서도 인사나 수작 같은 것은 ‘건넨다’고 하지만 주의나 언질 같은 것은 ‘준다’고 한다는 점이다. “담임선생에게 돈봉투를 주었다”와 “돈봉투를 건넸다”의 차이는, 돈이 건너간 뒤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생겨난다. 교사가 돈을 받아 ‘꿀꺽’ 했다면 ‘주었다’가 어울리고, 도로 돌려주었다면 ‘건넸다’가 좀더 자연스럽다. ‘주다’의 대상은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반면, ‘건네다’의 대상은 십중팔구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돈을 주었지만 받지 않더라”보다는 “돈을 건넸지만 받지 않더라”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주다’는 ‘소유권 이전’을 전제로 한 일방적 행위다. 돈을 ‘주면’ 돈의 임자가 바뀌고, 일을 ‘주면’ 일의 책임자가 바뀐다. 창피나 모욕, 주의나 언질도,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다. 이에 반해 ‘건네다’는 단순히 어떤 물건의 소재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이때 소유권 자체에는 변동이 없어서, 건너갔던 것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이 정상이다. 말을 ‘건네면’ 말이, 인사를 ‘건네면’ 인사가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공이 ‘건네주어서’ 강을 건너갔던 사람도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렇게 두 낱말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차이가 숨어 있지만 일상적인 입말에서는 ‘건네다’를 써야 할 곳에 ‘주다’를 쓰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건네다’는 격식을 차린 입말이나 글에서만 쓰는 말로 굳어진 감이 있다. [요약] 주다: 건너갔던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음|소유권 변동 건네다: 건너갔던 것이 다시 돌아온다는 전제가 있음|소유권 불변 [답] 주기로, 건넸지만, 건네는 김철호(번역가/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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