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8 22:26
수정 : 2006.05.19 16:51
동아시아는 지금
가령 개성공단 사업까지 포함한 남북한의 교류협력이나 남쪽의 대북 지원사업, 아니면 북한 처지를 이해하려는 정부쪽 발언에 대해 미국 보수 일각에서 대북정책을 망칠 것이라는 우려나 비판을 쏟아낸다 치자. 그때 한국 언론의 대응은? 알다시피 지난 몇년간 거의 꼭같은 패턴으로 되풀이돼온 ‘스테레오 타입’을 우리는 지겹도록 지켜봤다. ‘반미’ ‘친북’ ‘좌파’라는 정치색 짙은 싸구려 선동용어들이 저급한 유행가처럼 상대를 무차별 난도질한 저간의 사정을 통해서도 짐작되듯, 이 땅의 주류언론이 칼날을 겨냥한 곳은 미국이 아니라 거의 항상 우리 내부였다. 언론은 미국쪽 발언의 타당성이나 노림수, 배경, 파장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늘상 미국쪽에서 그런 발언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무슨 음모나 약점이나 무능이나 사상적 문제가 한국쪽에 있다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는듯 열심히 우리 내부를 쪼아댔다. ‘선한 미국과 악한 한국좌파’. 일부 친일파들이 보여온 심각한 도착증세와 유사하다.
식민지적 사회·정신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닮은 일본이지만 그런 언론행태를 상상하긴 힘들다. 예컨대 지난해 가을부터 고이즈미 정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아시아외교 자세를 비판해온 미국 일각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일본언론은 어떻게 대응했나. 보수적인 헨리 하이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6월 말로 예정된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방문 때 그가 미 의회에서 연설하려거든 야스쿠니 참배 안 하겠다는 뜻을 공표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을 의회쪽에 전달했을 때, 고이즈미 정권이 선한 미국뜻을 배반하는 고약한 반미국수주의 집단이라고 매도하는 일본언론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나?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줄곧 비판해온 <아사히신문>조차 자국 정부를 비판이 아니라 난도질하는 한국언론식 조악한 ‘자해행위’는 꿈도 못꾼다.
보도를 통제하는 중국에서 ‘자해행위’는 원천봉쇄다. 동남아 각국도 필리핀 정도를 빼고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가 매일 밤 늦게 아시아 각국 주요 방송보도들을 편집해 내보내는 프로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어둡고 험악한 보도들이 나오는 나라는 주로 한국과 필리핀이었다. 한국도 불과 얼마전까지 중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권력비판은 꿈도 못꾸는 통제사회였다.
그 숨막히는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그 덕에 이젠 어떤 면에선 일본보다 보도환경이 더 자유로와진 한국 언론의 자해행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참혹했던 민주화 도정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가 그 때문에 권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그때 그 세력들, 압제에 편승해 호사를 누렸던 세력의 권력탈환을 위한 네거티브 전략에 총동원되고 있는 현실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비판’과 부정적 정조 확산으로 반사적 이득을 노리는 조폭적 ‘자해행위’는 전혀 다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