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22 18:23
수정 : 2006.05.22 18:23
화엄사상 우주 표현한 상징물
18세기 주관적 해석 의미 곡해
불교미술사가 배진달 교수 주장
석가탑(국보 21호)과 다보탑(국보 20호). 경주 불국사에 있는 두 통일신라 탑의 이름은 국내 석탑미술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탑들의 이름이 알려진 건 300년도 채 안 된다. 조선 후기인 1708년 승려 회인이 13세기 일연의 기록을 정리한 〈불국사사적〉과 1740년 승려 동은이 찬술한 〈불국사고금창기〉에 처음 나오지만 두 문헌이 나오기 이전의 탑 명칭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1966년 석가탑 해체 당시 나온 11세기께 중수기에 ‘서 석탑’, ‘무구정광탑’ 등으로 표기된 것이 전부다. 석가·다보탑은 1300여년 전 당시의 원래 이름이 맞는 걸까.
불교미술 연구자인 배진달 용인대 교수가 불국사 석가, 다보탑은 후대에 탑의 의미를 곡해해 잘못 지은 이름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발표한 논문 ‘불국사 석탑에 구현된 연화장’을 통해 석가, 다보탑은 화엄사상의 우주인 연화장 세계를 표현한 상징물로 건립 당시부터 이름이 없었으며 18세기 이후 주관적 해석으로 탑의 원래 의미가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
배 교수는 두 탑의 사상적 배경으로 꼽혔던 법화사상(중생들의 인식 정도에 따라 깨달음의 정도에 차별을 두는 불교사상)은 절 창건 당시의 통일신라에서는 화엄사상에 눌려 별로 유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신라 고승 의상의 제자 표훈이 불국사 창건자 김대성에게 가르쳐준 화엄사상의 진수인 ‘화엄삼본정’의 고사를 들어 즉 부처가 깨달음을 얻을 때 삼매 속에서 보았던 연꽃 속의 웅장한 우주 모습, 곧 연화장 세계를 표현한 산물이 바로 두 탑이라고 해석한다. 팔각 연화지붕을 두른 동 석탑(다보탑)은 연화장 세계의 입체적인 모습, 삼층의 서 석탑(석가탑)은 평면적 실체라는 것이다.
논문은 불경 〈법화경〉의 ‘견보탑품’에 따라 석가와 다보여래의 상징으로 두 탑을 본 학계의 견해도 “18세기 기록만 의지한 것”으로 비판한다. 이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할 때 다보여래의 탑이 땅에서 솟아나 설법을 찬양하니, 그 탑 안으로 석가가 들어가 다보여래와 같이 앉았다는 ‘견보탑품’의 고사를 석가, 다보여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으로 표현한 불상 양식과 연결되는데, 학계가 이런 도상만을 근거로 두 탑을 법화경 중심으로만 해석했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다보탑도 원래 동 석탑으로만 불렀을 것이며, 11세기 석가탑 중수기의 ‘무구정광탑’이란 이름은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넣은 탑이란 뜻으로 고유명사는 아니란 견해도 덧붙였다. 논문은 내년 2월 김리나 홍대 교수 정년퇴임 기념 논총에 실릴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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