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5.25 22:39 수정 : 2006.05.26 17:21

새로운 사람들 ‘율려’

아깝다 이책

작가나 저자들을 만나보면 은연중에 의무감이나 사명감을 앞세우는 분들이 많다. <율려>의 작가 전승규 교수도 사명감이 만만치 않은 분이다. <율려>는 발해의 건국을 중심축으로 삼은 역사 판타지 소설인데, 작품 속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사명감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은 작가가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디지털 콘텐츠와도 일맥상통한다. 신화와 역사를 망각한 민족, 문화의 뿌리와 상상력이 거세된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작가의 신념 또한 작품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을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작가의 의지는 사명감과 의무감의 절정인 셈이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받아든 것은 발간하기 일년 전이었다. <율려>의 원고를 읽어보고 출판사에서 해야 할 몫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의무감이나 사명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듯한 문장이 되지 않도록 작가에게 수정을 부탁하는 일과 판타지의 상상력을 구체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창작 원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었다. 창작 원화는 작가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영국에서 유학하며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일년 남짓 이런 작업 과정을 거쳐 창작 원화 48작품을 수록한 3권의 소설이 세상에 태어났다.

<율려>는 가우리라는 이름의 대조영과 무라는 이름의 가상 인물이 중심이 되어 엮어가는 발해의 건국 이야기로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의 중국이 배경이다. 따라서 실제의 역사 사실과 문화 원형에 대한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있다. 상상력의 범위는 발해에 국한시키지 않고 한민족 전체로 외연을 넓혀 도깨비, 장승, 어처구니, 두억시니 같은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런 캐릭터들과 민족의 신물들이 해마리산(백두산)과 하늘못(천지)과 천문령을 주무대로 형요, 촉음, 염화 같은 중국의 괴물들과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나라를 세운다는 줄거리다. 또한 판타지 소설의 특징을 살려 퍼즐 게임처럼 비밀스럽게 전승된 단군의 옥첩과 민족 전래의 신물들인 칠지도, 삼족오, 치우의 깃발, 오룡거, 구미호에 얽힌 미스터리를 푸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율려>에서 발해의 건국은 우리 민족의 염원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여 통일시대를 준비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와 출판사가 <율려>를 통해 단군(조선)의 뿌리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묻는 동시에 저마다의 마음속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건국기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아울러 소설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으로 지경을 넓힘으로써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이 바탕이 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s)의 콘텐츠가 되어주기를 희망했다. 판타지 소설인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영화로 만들어져 대단한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현상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바람과 희망은 더욱 간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땅에서는 우리 체질에 맞는 판타지 소설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중국의 동북공정이 우리 역사를 위협하고 일본의 독도 망언이 우리 영토를 위협해도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토종 판타지 소설의 상상력이 선뜻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한다는 율려의 기지개가 아쉽다.


이재욱/새로운사람들 대표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