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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5 22:45 수정 : 2006.05.26 17:21

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
허균 지음. 북폴리오 펴냄, 1만5000원

민화란 ‘서민의 욕구’ 아닌 ‘서민적 욕구’ 담은 그림
복·장수·출세 등 세속적 욕망은 신분 초월
당시엔 그림 속 호랑이 ‘의미’ 중요할 뿐 ‘해학’ 관심없어

지금이야 우리가 마음 저 밑바닥에 있는 무의식이란 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란 말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사람들은 무의식이 우리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민화도 마찬가지다. 민화란 말이 만들어진 뒤에야 우리는 조선 후기 이후 서민들의 정서를 담은 그림들을 ‘민화’라고 떠올리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민화란 말을 쓰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금 우리가 민화라고 무리짓는 그림들을 하나의 범주로 구분하지도 않았다.

‘민화’라는 이름을 지금의 민화에 달아준 사람은, 우리 미술사에서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의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다. 야나기는 1929년 일본의 민속 그림에 민화란 이름을 붙였고,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의 근대 서민적 그림을 조선민화로 통칭하면서 민화란 말을 만들어냈다. 그 이전까지 세화, 책가도, 문자도 등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여러 그림들을 ‘민화’란 새로운 개념으로 묶은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민화라는 말을 새로운 이름으로 갈아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구체적으로 ‘겨레그림’이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대안으로 거론된 이름들은 ‘민화’란 단어를 뛰어넘지 못했다. 민화처럼 짧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화란 말은 분명 강한 힘을 지니고 있고, 실제 우리의 의식에 강하게 뿌리내렸다. 그래서 우리는 민화란 말이 아주 최근에 생겼는데도 무척이나 오래전부터 써온 말로 착각하곤 한다.

‘민화’라는 이름 붙인 건 일본인

연꽃은 유교에서 선비의 상징이지만 민화에서는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소재로 애용되었다. 민화 <연화도>에 나오는 아랫쪽의 물고기는 연꽃과 하나 되어 남녀의 행복과 부부 화목을 상징한다. 연밥을 쪼고 있는 새는 득남을 기원하는 의미한다. 씨앗을 얻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므로 잉태와 연결되는 것이다. 물밑 게와 새우는 딱딱한 껍질인 갑(甲)이 ‘갑을병정’에서 첫번째로 쓰이기도 하므로 ‘첫째’ ‘으뜸’을 의미한다.
좌우지간 민화는 다른 어떤 전통그림보다도 인기가 높다. 옛날 그림치고는 현대인이 보기에 어렵지 않고, 또 해학적이면서도 경쾌한 맛을 지녀 특유의 보는 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민화에 대한 책은 적었다. 특히 민화를 따로 떼어 다룬 알기 쉬운 입문서는 드물었다. 오랫동안 한국 전통문화와 미술을 대중들에게 알려온 허균 한국민예연구소장의 새 책 <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는 모처럼 나온 대중적인 민화 소개서다.

민화는 18~19세기 조선의 신분제가 흔들리는 사회변화속에서 경제력을 지닌 상인들이 출현하고 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커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서민용 생활장식 그림이다. 이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 이후 서민들의 일상을 예찬하는 그림이 등장한 것이나 옆나라 일본에서 서민생활을 그린 대중적 목판화인 ‘우키요에’가 18세기 절정을 맞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민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현대인들이 민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그 사이 사람들의 생활과 미의식이 엄청나게 바뀐 탓이다. 가령 민화의 대명사격인 까치호랑이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를 볼 때 현대인들은 맹수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모습 때문에 그림속 호랑이가 ‘해학적’이라고 느끼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민화는 기술적 묘사나 예술성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그림에 등장하는 것들의 의미와 내용을 중시한 그림이고, 그래서 호랑이를 어떻게 그렸냐가 아니라 호랑이는 무슨 의미냐를 중시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그림에 원하는 내용이 있는 것이 중요했지 호랑이 생김이 어딘가 모자라 보여도 개의치 않았다. 또한 작위적인 것보다 천연스러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미감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민화속 호랑이 그림은 이상할 것도 없고 재미있을 것도 없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책에서 주목할만한 주장을 펼친다. 민화란 ‘서민의 욕구’를 담은 그림이 아니라 ‘서민적 욕구’를 담은 그림이라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고? 민화가 반드시 서민들만을 위한, 서민들만의 그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화는 서민적인 그림이지만 서민들만 즐긴게 아니라 양반은 물론 신분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임금까지 모두 민화를 즐겼다는 것이다. 민화가 담는 복, 장수, 출세 등의 욕구는 서민들만의 정서가 아니라 인간 공통의 세속적 욕망이고, 그런 세속적 그림을 신분을 초월해 장식처럼 곁에 두었다고 한다.

의미 맞춘 ‘민화 인테리어’ 어때요?

민화는 또한 ‘고급문화의 대중화’ 현상이다. 상류층이 즐기던 문화가 아래로 퍼져나가듯 양반들이 즐기던 것을 서민들도 양반들을 동경해 따라서 즐긴 것이다. 겸재 정선 등이 그린 ‘정통 명품’ 금강산도들과는 달리 이상향을 상징하는 민화 금강산도가 따로 있고, 선비들이 높은 정신세계를 담는 그림인 사군자와는 다른 민화 사군자도가 따로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상류층이 독점하던 각종 문화아이콘들이 대중화하는 현상도 민화의 특징이다. 왕실의 상징으로 왕족만 쓰던 봉황 문양이 조선 후기가 되면서 생활장식문양이나 그림 소재로 쓰이게 됐고, 군자의 상징으로 선비들이 사랑하는 꽃이었던 연꽃은 세속적 욕망과 결합해서 다산의 상징으로 해석돼 민화의 소재로 거듭났다.

책의 말미에 지은이는 현대인들에게 민화로 집을 꾸며보라고 권한다. 민화란 쓰임새가 정해져있는 그림인만큼 원래의 용도와 의미에 맞춰 집안을 치장한다면 현대에도 민화의 의미를 계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한옥 대신 아파트에서는 어떻게 민화를 걸어야 할까? 안방은 ‘여성의 공간’이란 개념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연꽃그림·화조도·석류그림·물고기그림을, 서재에는 송학도·금강산도·복숭아그림을, 옛날 대청 구실하는 마루에는 윤리문자도를 걸어놓으면 제격이라고 추천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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