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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5 23:01 수정 : 2006.05.26 17:20

사우스마운틴 이야기
존 에이브램스 지음. 황근하 옮김. 샨티 펴냄. 1만3000원

‘집과 자연’을 짓는 직원 30명의 미국 ‘남산건설’ 설계에서 시공까지 한사람이 책임지고
양적 성장 거부한 채 ‘삶의 질’ 높이기 전념 수익은 지역공동체 임대주택단지 재투자

전자렌지, 냉장고 등 전자제품에는 사용설명서가 있다. 손전화 매뉴얼은 두툼하니 책 한 권이다. 수억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한 가족이 버성기는 공간인 집에 대한 설명서를 받아 보았는가. 보일러 배관·수도관이나 전기배선이 바닥과 벽 어디께 숨어있는지 알려나 주던가?

그런 건설회사가 있다. 삼성도, 현대도, 엘지도 아니다. 불행하게도 미국 북동부 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사우스 마운틴 컴퍼니’라는 회사다. 촌스런 이름 ‘남산건설’, 기억해 둘 만하다.

창업주는 68혁명의 정신적 세례를 받은 존 에이브램스. 체제에 대한 순응과 물욕을 거부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새 세상을 꿈꾸던 세대다. 그는 단순히 집을 짓지 않는다. 집과 자연, 집과 집주인, 집과 사회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이어준다. 나아가 집과 기업이 세대를 넘어 영속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그가 세운 여덟 가지 원칙은 △민주적인 직장 만들기 △성장이라는 불문율에 도전하기 △다양한 가치 실현하기 △마서즈 비니어드 섬에 전념하기 △장인정신 지키기 △지역주민 보호하기 △지역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기 △성당을 짓는 사람처럼 생각하기.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니라 ‘그들’이다. 1975년 친구와 동업으로 시작한 건축회사를 12년 뒤인 1987년에 종업원 주식 소유제로 전환한 것. 30명 직원 가운데 16명이 오너다.

<사우스 마운틴 이야기>(샨티 펴냄)는 ‘이상한 창업주’가 안식년을 맞아 회사 일에서 손을 떼고 정리한 일종의 사사(社史)다. 전권에서 자신은 물론 회사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느껴진다. 우리같은 회사 있으면 나와봐봐~.

자본주의 사회에서 빌린 차를 세차하는 사람은 얼뜨기. 하여, 이 회사는 직원을 뽑을 때 오너가 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살핀다. 일단 채용되면 5년동안 회사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자 하는지, 현재의 오너들이 그를 파트너로 받아들이기 원하는지를 가늠한다.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오너가 된다. 오너들은 회사의 임원이 되어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휴·퇴직 때는 주식을 회사에 되팔아야 한다. 매년 모든 직원은 이윤의 35%를 현금보너스로 받는다. 나머지 이윤의 반은 오너한테 나눠주고 나머지반은 회사에 유보한다.

30명중 16명이 ‘오너’ 자부심 가득


어? 사진이 뭐 이래? ‘사우스마운틴’이 시공하는 주택 공사의 모습이라니. 공사장에 놀러온 악동들과 흡사한 이들은 이 회사의 직원이다. 놀이와 일의 행복한 결합을 지향하는 회사답지 않은가. 샨티 제공
매출이 늘던 어느 날. 섬 바깥으로 진출해 더 큰 돈을 벌 것인가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결과는? 큰 돈벌이가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판단하고 섬 안의 일에만 전념하기로 한다. 그들은 성장 자체를 위한 무한 성장, 즉 ‘암세포의 논리’를 거부한다.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성장은 ‘달팽이 속도’. 작은 규모를 유지하면서 내부에서 많은 일을 하는 방식 아래 교육을 장려하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준다.

건축주와 계약서는 달랑 3쪽. 계약은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의미있는 만남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25년간 400만달러어치의 건축 일을 하는 동안 소송이 한 차례도 없었다. 회사의 작업장과 사무실은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고 집에서처럼 티타임 중에 회사에서 이뤄지는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가치관이 비슷하고 그에 부합하게 삶으로 아무도 부자가 되지 못했지만 일을 즐기며 마음 편하게 산다. “‘어느 누구’도 부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적절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은이는 고백한다.

계약 3쪽만…집주인과 신뢰 중시

통상 아파트를 지을 때 터 조성, 계획, 설계, 시공, 실내장식, 사후관리가 분리돼 있다. 복잡한 도급과정, 분산된 책임탓에 입주자는 건물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반면 ‘남산건설’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사람의 장인이 모든 책임을 진다. “고객의 집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만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토. △통합된 조경설계 △아름답게 나이 드는 건물 △세심하게 고른 재활용 목재 △생태건축 기술 원칙을 지킨다. 열쇠와 함께 넘겨주는 사용설명서에는 건물의 역사, 설계 및 구조 정보, 하수구 배열, 벽과 수질 정보, 사용된 재료, 유지보수 지침, 장비 설명과 보증서가 포함돼 있다. 또 일종의 벽과 천장에 대한 엑스레이 사진집인 ‘러핑북’도 건네준다. 그들의 목표는 소박하다. 중요한 건물이 아니라 좋은 건물, 사랑받는 건물을 짓는 것.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마을에서 가장 좋은’ 건물을 만드는 회사를 지향한다. 살아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성당을 짓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역경제와 지역공동체를 위해 자신들의 수익을 조건없이 재투자한다. 소규모 임대주택단지를 조성해 공급하고 회사 사람들도 서민주택기금에 참여해 기금을 대고 모금을 한다. 또 공동주거 마을을 조성하고 휴가철 성수기 외에 노는 집을 서민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조를 지원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건축회사가 있을까. 언감생심. 남산건설 같은 중소 건설업체가 발붙일 공간이 없다. 공법이 획일화·간편화하고, 레미콘 타설기, 대형 크레인 등 건설장비가 기계화되면서 수공업적인 영세 기업은 몰락하고 있는 것. 대형사가 지은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실내 디자인은 붕어빵. 집주인의 기호와는 무관하게 “싫음 말구” 주어질 따름이다. 그나마도 모델하우스와 실제 공급되는 것과 달라 자주 말썽이 생긴다. 입주자가 건물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집주인한테 맞춰 건물이 지어지는 일은 호사스런 꿈인가.

더불어 사원의 처지에서 이런 회사가 부럽지 않은가. 강요되는 명퇴, 비정규직이라도 “싫음 말고” 똥배짱. 월요일 출근이 부담스런 회사가 아닌, 사람이 좋고, 더불어 일하는 게 즐거운 그런 회사 없을까. 조금 벌어 조금 쓰더라도 보람있는 일을 하는 지속성있는 회사. 희망은 갖자. 적어도 이런 책을 내는 출판사는 있지 않은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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