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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8 23:22 수정 : 2006.05.28 23:22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로 한겨레 문학상 당선 조영아씨

“저녁 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갔다가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어요. 너무 놀랍고 기뻐서 장 보던 것도 중단하고 집으로 가서 식구들과 파티를 했죠.”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의 작가 조영아(40)씨는 “처음 쓴 장편인데다 너무 급하게 써서 기대를 안 했는데 상을 받게 됐다”며 “신춘문예로 등단을 하고도 지면을 얻기가 힘들어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다시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풍부한 상징 돋보여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무렵의 남자아이를 주인공 삼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연립주택 옥상에 지은 무허가 옥탑방에 사는 아이가 세상의 뒷모습과 인간의 숨은 진실을 알아 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특히 옥상을 가로질러 날 듯이 뛰어다니는 흰색 여우, 나라 안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발파해체하는 꿈을 꾸는 아버지, 전인권과 아인슈타인을 닮은 밤무대 색소폰 연주자 ‘전인슈타인’과 같은 풍부한 상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가 사는 동네가 은평구 진관외동이에요. 뉴타운 개발 예정지여서 한창 집들을 허물고 있는 중이죠. 예쁜 동네가 망가져 가는 것도 속상하고, 무허가주택에 살던 분들이나 세입자들이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쫓겨나는 모습도 안타까웠어요. 철거나 도시빈민 문제를 다룬 소설들은 많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다루어 보려 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조영아씨는 서울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지난해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마네킹 24호>라는 작품으로 당선했다. 대학 시절에는 주로 시를 써서 교내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에 시적 상징과 이미지가 도드라져 보이는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니까 대학 시절 이후 접었던 글을 다시 쓰고 싶어졌어요. 대학 때는 시를 썼지만, 나이 들어 다시 쓰려니 시는 여의치 않고 소설이 다가오더군요. 98년 무렵부터 소설 창작 강좌를 수강하면서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신춘문예 출신 첫 장편 도전


그렇게 해서 중편 하나와 30편 남짓한 단편을 완성한 뒤 첫 장편으로 도전한 게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였다. “신춘문예에 당선했어도 기대만큼 청탁이 오지 않았고 스스로를 긴장시킬 계기도 필요해서 장편 공모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구상은 지난해 가을부터 했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올 2월부터였다. 마감까지 겨우 한 달 남짓 남아 있었기 때문에 원고지 1000장 분량을 쓰느라 자신을 혹사시켜야 했다.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과도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고.

“그래도 스스로 재미를 느껴 가며 쓴 작품이라 그리 힘든 줄을 몰랐어요. 다 쓰고 작품을 덮으려니까 주인공과 헤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였죠.”

“기대 안했는데…용기 나네요”

대학 시절부터 카프카와 쿤데라를 좋아했고 습작기에는 이청준, 오정희, 조경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기도 했다. 제목이 정해지지 않으면 작품을 시작하지 못하며, 제목에서부터 소설을 진행시키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소재나 주제에 갇히지 않고, 재미있게 오래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은 무엇보다 독자와 소통이 되어야 하니까 우선은 잘 읽혀야겠죠. 그렇지만 이야기로서의 재미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감추어진 재미까지를 갖춘 소설을 쓰고 싶어요.”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최종 심사평

‘여우야…’ 간결하고 탄탄한 서사성 갖춰
‘당신을…’은 캐릭터 약하고 ‘고양이…’는 이야기구성 약점

최종 심사에 올라온 작품은 <당신을 만나는 새벽 3시 20분>, <고양이 사냥>,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 편이었다.

<당신을 만나는 새벽 3시 20분>은 전국 이 여관 저 여관을 떠돌며 장기투숙하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상황설정도 뛰어나고 정치적 암시도 뛰어나다. 그러나 그 특별한 인물들의 캐릭터가 눈에 제대로 잡히지 않아 서로의 말꼬리를 물 듯 하염없이 주고받는 대화까지 작품의 밀도를 낮추고 말았다.

여기에 비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희극적으로, 그러나 음울하게 아주 잘 패러디한 <고양이 사냥>은 작중 인물들의 캐릭터가 선명하다. 그 가운데 노파의 인물 설정은 매우 뛰어나다. 문장도 유려하고 이지적이다. 그런데 작품 중반을 넘어서면서 구성상의 결정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작품 앞부분부터 있어온 강초연의 등장까지는 좋았으나 그녀의 사랑과 죽음이 전체 이야기에 잘 섞여들지 못했다. 또 인물들의 대화가 뒤로 갈수록 누구의 말인지 모르게 늘어지고, 결말 또한 상투적인 모습을 띠는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는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중학교에 입학하는 남자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 밑바닥의 모습을 살피는 작품이다. 그런 설정이 최근 너무 익숙한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단문으로 끝까지 이야기를 흩트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이 작가의 서사적 힘에 더 주목하기로 했다. 요소요소에 에피소드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잘 배치했으며, 무엇보다 작품을 끝까지 읽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세우며 세 명의 심사위원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소설에서, 특히 장편소설에서 이야기 앞뒤의 아귀와 균형을 맞추어가는 서사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였다. 그런 점에서라면 아주 믿을만한 신인이 탄생한 셈이다. 이 큰 상의 당선을 바탕으로 부디 더 큰 모습으로 정진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범신, 이순원,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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