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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두 번째 시집 <목련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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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 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전통 서정시의 계승’
시 전문 계간지 <시작> 여름호는 ‘‘다른 미래’를 꿈꾸고 사유하는 젊은 시인’이라는 이름의 특집을 마련했다. 고영민 길상호 박성우 신용목씨 등 18명의 신작시를 싣고 평론가 여덟 사람의 평을 곁들인 야심찬 기획이다. 평론가 권혁웅씨가 ‘미래파’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 엽기적이고 자폐적이며 무의식과 욕망의 표출에 치중하는 젊은 시인들과 변별되는, 서정시의 원리에 충실하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잃지 않는 또래 시인들을 집중 조명한다는 취지였다.
이 특집에 손택수(36) 시인 역시 포함되었다. 그의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2003)을 대상으로 한 글에서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선태씨는 손택수 시가 고향 담양의 대숲에서 빚어져 나왔음을 지적했다.
<목련 전차>(창비)는 손택수씨의 두 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가족에 연원을 두고 있으면서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향해 더욱 넓고 깊어진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 굽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호밋날 끝에 돌 부딪는 소리, 강이 들을 껴안는다 한 굽이 두 굽이 살이 패는 아픔으로 저문 들을 품는다//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리 만리 소쿠라지는 울음소리-//까딱하면, 저 속으로 첨벙 뛰어들겠다”(<강이 날아오른다> 전문)
시집 맨 앞에 배치된 이 시에서 강과 아낙과 물새는 똑같이 한자 ‘을(乙)’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얼핏 여유롭게 흘러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양은 실은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관찰하는 이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지녔다. 시인은 ‘까딱하면 뛰어들겠다’고 쓰고 있지만, 그는 시를 씀으로써 이미 뛰어든 것이다. 강과 아낙과 물새의 아픔과 울음 속으로. 시란 그런 것이니까.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기. 왜냐하면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은 비범한, 시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첫 시집처럼 고향 담양이 ‘연원’
“상할머니의 몸은 천문을 품고 있었던 게지/내가 알지 못할 예감으로 떨리는 우듬지 끝/떨어져내리는 잎사귀 잎사귀마다/빛나는 통증으로 하늘과 이어져 있었던 게지//쿠르릉 밤늦게 저린 다리를 끌며 일어난 어머니 빨래를 걷는다/서러운 몸속에서 몸속으로 구름이 유전하고 있다”(<구름의 가계> 부분) 강과 물새의 성(性)은 알 바가 없다. 아픔의 공화국에 거주하는 사람 주민들의 성에 주목한다. 아낙과 상할머니와 어머니는 모두 여성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아픔, 그들의 빛나는 통증, 천문(天文)을 읽을 수 있는 특출난 능력이 “땀 뻘뻘 생의 뻘구멍”(<꽃낙지>)을 통과해 온 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할 때 구멍이란 통증을 통찰로 형질변화시키는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구멍을 여성의 상징으로 드는 것이 반드시 비속한 상상력의 작동만은 아니다. 열려 있어서 만물을 흔쾌히 통과시키는 구멍의 너그러운 생리는 수용성과 내성(耐性)이라는 여성의 성정을 닮았다. 구멍은 호흡이며 생명이고 화엄이다. “스윽, 제비 한마리가,/집을 관통했다//(…)//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그야말로 무방비로/앞뒤로 뻥/뚫려버린 순간,//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이 사립문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젖히고”(<방심> 부분)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절집 기둥 기둥마다/처마 처마마다/얼금 송송/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환하게 뚫려 있구나”(<화엄 일박> 부분) 여성을 닮은 ‘구멍’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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