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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현대 중국을 가로지르다
전인갑 외 지음. 새물결 펴냄. 1만9000원 |
5·4운동 때 타도되었거나 1930년대 국민정부서는 숭앙
최근 또 상징조작 대상 된 공자 21C 중국, 왜 공자에 집착하나
중국 춘추시대 사람인 공자(BC 552~BC 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50~56세에 노나라에서 반짝 관리생활을 한 것 외에 74세에 죽기까지 유세했으나 세일에 실패하고 제자 교육으로 돈 게 전부다. 확실한 그의 저작은 제자들이 정리한 <논어>.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천개. 교육자, 철학자, 정치 사상가, 문학자, 편집자…. 그의 가르침은 유가, 유교, 유학 등 역사적 환경에 따라 학문과 정치, 또는 종교 사이를 오갔다.
20세기 중국만 해도 그의 운명은 극과 극을 오르내렸다. 일본에 예속됐던 1919년 5·4운동 때, 공자는 타도의 대상, ‘도둑놈 공자(盜丘)’였다. 그의 예교질서가 중국을 식민지보다 못한 차식민지로 전락시켰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그는 ‘천하의 몹쓸놈’이 됐다. 곡부 대성전 안의 공자상은 눈을 뽑히고 배에 구멍이 뚫리고 급기야 밖으로 끌려나와 거리에서 부숴졌다.
1930년대 중후반 국민정부에서 공자는 숭앙의 대상이었다. 당정은 탄신기념일을 지정하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어 민족정신의 고양, 민족의 영예 유지의 구심점으로 선전했다. 그후 70년이 지난 21세기 벽두에 공자는 다시금 상징조작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차원에서 300~500권 분량의 <유장>(儒藏)을 내기로 하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중대 국면마다 공자를 정리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파괴해야 할 대상, 현창할 대상으로 천양지차일 망정…. 중대한 국면이란 근대성 획득, 또는 국민국가 수립·발전 등 형태가 다르지만 ‘강한 중국’을 지향한 점은 일치한다.
왜 공자인가. 공자와 그의 가르침은 2000년 이상 깊숙이 뿌리내려 중국의 문화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가 되었기 때문. 넓은 땅,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탓에 권력 담지자들한테 통합기제는 중요하다. 그들에게 공자 말고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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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비마다 중국의 권력 담지자들은 필요에 따라 공자에 대한 격하와 숭앙을 거듭해 왔다. 인민의 뇌리에 워낙 뿌리깊이 박혀 상징조작이 힘을 받는 까닭이다. 사진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취푸 대성전의 공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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