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09 19:33
수정 : 2006.06.09 19:33
프랑스 90년대 2차청산
처벌 끝나도 기억 ‘재생’
지난 2일부터 이틀간 ‘친일·대독협력과 기억의 정치학’을 주제로 한국과 프랑스 현대사 전공 역사학자들이 친일과 대독 협력을 비교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연구소가 주최한 이 행사의 참관기를 이학수 부산교대 강사가 보내왔다.
프랑스는 대독 협력 문제를 가장 성공적으로 청산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그것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앙리 루소(프랑스 현대사연구소)는 프랑스가 해방 이후 청산을 너무 급하게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불공평하게 처리된 경우가 많았으며, 사면법을 통과시킨 뒤엔 처벌이 곤란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국민이 오랫동안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일종의 내전을 치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해방 직후의 청산을 비켜갔던 범죄자들에 대한 2차 청산이 진행됐다. 이번에는 조국을 배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차마 인간에게 범해서는 안 될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독 협력자들을 기소하고 처벌했다. 이런 반인륜 범죄는 특정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적,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기소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지 말자는 주장이나 국민감정을 일시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과거청산을 전개하는 시도 등이 공존하는 우리의 경우도 이를 국제적 수준의 반인륜 범죄 차원에서 논의할 때보다 많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시사점을 받을 수 있었다.
장피에르 아제마(파리정치대학)는 레지스탕스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 여러 정치세력들은 실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했던 대원들을 철저히 따돌리면서 이를 이용했다. 이 때문에 레지스탕스 운동은 프랑스 역사에서 과도하게 강조되어 신화와 전설이 됐다. 그는 이제 레지스탕스 ‘신화’를 깨는 작업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한 민족의 역사가 신화로 구축되면 설득력도 없고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역사적 사실에 가깝게 과거를 복원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편 역사학자와 (과거청산을 위한)위원회 중 누가 친일 청산을 담당해야 하는지를 놓고 국내 역사학자들 간에 진행된 논의에선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다. 반면 이 논쟁에 참여한 프랑스 학자들의 입장은 명쾌해 보였다. 프랑스 역사가들은 위원회를 만들어 자료를 모아 해석·설명하는 작업을 했으며, 대독 협력자에 대한 판결은 재판부에 맡겼다고 했다. 또 판결이 끝났다 해서, 또는 사면법이 통과됐다 해서, 대독 협력에 대한 연구를 접은 것이 아니라 계속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연구를 진행했음도 증언했다.
“한국에서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은 개인에게 사회적 재판 나아가 사회적 매장인데 지금 그것을 밝혀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자, 프랑스 학자들은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 또는 선조가 대독 협력자라는 사실은 계속해서 지고 가야 하는 운명이다. 대신 조상이 범한 범죄를 빌미로 죄가 없는 후손을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성숙함을 보이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답변했다.
그동안 프랑스와 한국은 서로 역사적 지형이 다르고 점령 시기와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사는 곤란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는 친일과 대독 협력을 비교 접근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또한 프랑스-알제리, 일본-한국의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다는 수확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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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21일 해방된 파리에서 한 나치 부역 여성이 하켄크로이츠를 가슴에 단 채 끌려 나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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