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15 21:50 수정 : 2006.06.16 15:04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옮김. 아카넷 펴냄, 2만8000원

관용적이지 못한 민주정보다 무능한 독재정 아래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진부하면서 낯선 자유론

우리가 자유라는 말에서 받는 느낌은 뚜렷하지 않다. 자유의 어감이 어슴푸레한 것은 이 말이 왜곡돼 마구 쓰인 탓이 크다. 또한 자유에 대한 불감증은 정서적 측면을 간과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거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호소는 아무래도 실감이 덜 난다. 차라리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이 좋아”라는 시구가 우리 정서에 맞다. 그런데 웬걸, 이것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생각은 아닌 듯싶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유는 복종이다.”

이 책은 사상사가로 통하는 이사야 벌린 저서의 5번째 한국어판이다. 벌린의 책은 1982년 <칼 마르크스>(평민사)를 시발로 1990년대 <계몽시대의 철학-18세기의 철학자들>(서광사)과 <비코와 헤르더>(민음사)가 우리말로 옮겨졌고, 지난해 <낭만주의의 뿌리-서구세계를 바꾼 사상혁명>(이제이북스)이 번역되었다. 2001년 재번역된 <칼 마르크스>는 1980년대의 ‘이념도서 1호’이기도 하다.

벌린은 편집자가 아주 싫어하는 유형의 저자였다. 편집 실무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저자가 과연 몇이나 있으랴마는 자신의 글을 절차탁마하는 그의 자세는 편집자들이 학을 뗄 정도다. 벌린은 자기 글을 고치고 또 고치고, 다듬고 또 다듬었다. 하여 벌린의 <자유론>은 기획한 지 무려 16년 만에야 선을 보였다. 참고로 벌린의 1969년판 <자유론> 가운데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은 이미 발표한 것들이었고, 그 논문들에 대한 비평을 해명하는 ‘서문’만 새로 쓴 것이다. 벌린의 <자유론> 한국어판은 ‘네 편의 논문’에 한 편을 더하고, 자유에 관한 다른 논문들을 덧붙인 2002년판을 번역저본으로 한다.

벌린이 말하는 자유는 진부하면서도 낯설다. 그의 자유론이 결정론, 곧 20세기의 현실사회주의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약간 철지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서양문화의 풍부한 교양에 바탕을 둔, 자유의 개념과 가치를 궁극까지 파고드는 벌린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벌린은 견해를 축소함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방어한다. “내가 논하는 자유는 행동의 기회이지 행동 그 자체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구분은 좀더 복잡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자유 또는 어떤 일을 할 자유가 있나?”와 “나를 지배하는 이는 누구인가?”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과감하지만 관용적이지는 못한” 평등주의 민주정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무능한” 전제자의 치하에서 더 많은 ‘소극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벌린의 주장에 대해 비판자들이 분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여부는 벌린의 실제 발언을 놓고 판단해보자. “민주주의가 아닌 곳에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 가운데 많은 부분이 민주주의에서 침해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재하에서도 독재자가 자유주의적 심성을 가졌다면 백성들에게 많은 양의 개인적 자유가 허용되는 경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위와 이해를 향한 심오하고 보편적인 동경을 자유를 향한 욕구와 혼동하고, 사회 차원의 자아 지향성이라는 발상을 자유와 동일시하여 자유로워야 할 자아라는 것을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전체’로 보는 혼동이 첨가된 결과, 소수 권력자 또는 독재자의 권위에 굴종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권위 덕분에 어떤 의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마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원론은 일정한 정도의 ‘소극적’ 자유를 함유하는 것으로서, 계급이나 민족이나 인류 전체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고 하는 ‘적극적’인 이상을 훈련되고 권위적인 거대한 구조 안에서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목표보다 내가 보기에는 더 맞고 더 인간적이다.” 이러한 벌린의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는 <20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에 실린 기 소르망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달된 바 있다. “자유주의자라면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반대자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최성일/도서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