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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2 21:30 수정 : 2006.06.23 16:27

열림원 ‘슬픈 카페의 노래’

아깝다 이책

사랑이 신비로운 이유는, 그것이 서로 주고받는 상호적 경험이 아니라, 혼자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자기 속에 강렬하고 이상야릇하면서도 완벽한 색다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열림원 외국문학시리즈인 ‘이삭줍기’ 열두 번째 작품, 카슨 매컬러스(1917~1967)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이렇게 사랑의 본질을 읊조리면서 삶의 깊이를 신비롭게 꿰뚫고 있는 매혹적인 명작이다.

미국 남부의 황량한 시골 마을. 6척 장신에 힘세고 인색하고 때때로 야비하기도 한 여자 아밀리아. 남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뻔뻔스러우면서도 누구나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꼽추 라이먼. 아밀리아를 사랑하다 버림받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범죄전과자 메이시. 이 ‘이상하고 비범한’ 사람들의 기이하게 엇갈린 사랑. 그 중심에 카페가 있다.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뇌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온갖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여성 작가 카슨 매컬러스는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소외된 이들, 범죄자·난쟁이·벙어리·꼽추·거인·성불구자 등을 작품의 주요인물로 무대에 세웠다. 이 인물들은 작품의 맥락 속에서 ‘비정상적인 광기’의 캐릭터로 읽히기보다, ‘보편적으로’ 소외된 인간 군상의 대표로서, 우리 자신의 분신(Alter ego)처럼 다가온다. 매컬러스는 그들의 사랑들을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그려낸다. 동성애도 이성애와 똑같은 정도로(혹은 그 이상으로) 인간의 열망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아픈 자’가 ‘아픈 자’들의 드라마를 형상화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아픈 자’임을 환기시키는 문학인 것이다.

극도로 절제된 문장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한 편의 픽션이, 놀라운 솜씨로 인간의 감수성을 파고들면서, 마치 계시처럼 갑작스레 생을 심상으로써 이해하게 한다면, 독자들이 놓치기에 ‘아까운’ 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매컬러스가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열정적으로 글쓰기를 이어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투병 중에도 작업에 대한 의지를 불살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던 장영희 교수는 매컬러스의 이 최대 걸작을 주옥같은 우리말로 옮겨내었다.

‘이삭줍기’는 <슬픈 카페의 노래>와 같은, 세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면서도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거나 소개되지 못한 수작들을 이삭 줍듯 담아내는 시리즈이다. 첫 출간 당시엔 매스컴과 독자들의 수많은 주목과 독려를 받아 백상출판문화상 기획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욕에 넘친 첫발을 내디뎠음에도 안타깝게도 판매가 부진하여 시리즈 전체가 ‘아까운’ 책들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는 상당 기간 동안 편집 진행이 지연되었고, 이 시리즈의 존속 자체를 두고 회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몸살 끝에 편집위원들과 출판사가 내린 결정은 ‘처음의 기획 취지대로 계속 가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리즈물 진행에 있어 위험한 시도가 될 수도 있을, 판형과 디자인 변경을 감행하였고 그 시도의 첫 번째 성과물이 <슬픈 카페의 노래>이다. 외국문학 ‘클래식’ 편식 경향으로 인한 판매 부진, 그로 인한 제작 지연, 또 그로 인한 시리즈 홍보 미진, 이런 식의 연쇄 악순환도 ‘이삭줍기’가 활기를 얻지 못한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이삭줍기’는 이미 출간된 작품보다, 준비된 쌓인 원고들, 기획들이 더 많다. 낭만주의 문학의 효시, 범죄추리소설의 원형, 환상소설의 선구작, 페미니즘 논쟁작, 고딕소설의 고전, 유령소설의 대표작, 악마주의 대표작, 성적 상상력의 최고작, 아프리카 전승문학, 하이퍼픽션의 대표작…. 이 모든 작품들이 독자들과 더 많이 혹은 더 빨리 만나게 되기를 내가 염원하는 것은, 이 시리즈의 담당 편집자로서가 아니라, 이 책 혹은 원고들을 읽은 독자 입장에서다. 외국문학 독서 시장에 또 다른 물결을 일으키리라는 기획의 초심을 기꺼이 이어받고 있는 걸 보면, 의미 있는 책 만들기에 대한 욕심은 역시 쉽게 포기되지 않는 것이다.


박은경/열림원 편집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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