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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전은 전쟁의 파괴력을 가속도로 증대시켰고 전쟁은 기술발전을 가속화했다. 근대 이후 군사기술과 민간기술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들은 최첨단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돼 있다. 발사 직후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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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기술과 민간 기술 다를까 같을까
르네상스 이래 전쟁사 되짚어보면 담은 명백
절대군주들 군비경쟁 위해 신무기 기술자 환대
19세기 ‘과학 애국주의’로 끔찍한 살인기계 발명
원자력·인터넷도 전쟁 기술을 일상화한 것
기술 속 사상/⑪ 기술과 전쟁 기술과 전쟁을 묶어 생각해보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전투기나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대포동 미사일 정도가 쉽게 떠오를 것이다. 조금 더 역사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버섯구름으로 상징되는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과 히로시마·나카사키의 참상을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원폭은 2차대전 이후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활동에 나서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에만 주목하다보면 기술과 전쟁의 연관이 20세기 이후의 현대 기술문명 사회의 독특한 특징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기술발전이 상상을 초월하는 신무기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현대에서야 기술과 전쟁이 복합적으로 관련을 맺게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 볼 수 있다. 또한 최신예 전투기나 원폭을 전형적인 전쟁기술로 생각하다 보면 전쟁과 관련된 기술과 그렇지 않은 기술이 분명하게 구별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도 F15 전투기를 해외여행 가는 데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전투기를 타본 경험은 없지만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기에), 원폭을 건축현장에서 땅을 파내는 데 이용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위 군사기술과 민간기술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생각 모두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유사 이래로 기술적 발전과정과 전쟁의 수행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러지 않았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무의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전쟁을 일으킨 군주나 지휘관들은 모든 방법과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꼭 이겨야 할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전쟁에서 꼭 이기겠다는 집념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의 가능성은 늘 매력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신무기가 적군을 효과적으로 죽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주는 일 말고 인류복지에 보탬이 될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신무기에 비싼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다. 권력자들 이기려고 얼마든지 지불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엄청난 자원의 투자와 집중이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기술은 ‘발명가 신화’와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다.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던 한 연구원이 실패한 실험재료를 버리려다가 우연히 몇 번이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편리한 메모지를 발명했다는 이야기 따위가 그런 생각을 부추긴다. 그러나 접착력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겸비한 접착제의 우연적 발견이 실제로 광범위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제품으로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의 시행착오와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했다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마찬가지로 전쟁기술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우연한 발견의 결과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용화되고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에 걸친 집중적인 자원 투여와 집단적인 기술연구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보통 활보다 훨씬 큰 활을 사용하면 아주 먼 곳의 사냥감도 정확하게 쏘아 잡을 수 있다는 12세기 웨일즈 농민의 깨달음이 1415년 10월25일 아쟁꾸르 전투에서 헨리 5세 원정군의 압도적인 숫적 열세를 극복한 승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웨일즈 침공 중에 배운 장궁의 위력을 여러 재료를 동원한 시험으로 배가시키고 장궁부대의 형태로 집중화시킨 에드워드 1세 휘하 기술자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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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 한 잡지에 실린 풍자화. 기관총 발명자가 전쟁희생자들을 내려다보며 가소로운듯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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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한양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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