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6.29 19:20 수정 : 2006.06.30 16:45

황주환/국어교사

나는 이렇게 읽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 젊음은 고통스러웠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한다. 모든 젊음은 처음부터 고통의 바구니를 타고 청춘의 강을 건너도록 예정되어 있었기에. 20대를 삶의 꽃이라고 하지만, 불화한 세상과 부딪히는 불안과 통증에, 청춘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나는 니체를 타고 청춘의 강을 건넜다. 나락속에서 방향을 잃은 그 때, 니체가 고독한 진리의 담지자로 세상을 향해 날리는 독설이 나에게 투사되었다.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사람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다.’ ‘세계는 무한히 해석 가능하다. 통일 일원론은 타성의 욕구일 뿐이며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힘의 징후이다.’ 이는 당시 삶의 지표를 잃은 나를 폭발시켰다.

정확히 21살 때 그의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밤을 새웠다. 대학 도서관에서, 떨리는 가슴으로, 드디어 내 삶의 의미와 조우하게 되었다는 희열로, 밤을 새워 정독한 기억이 생생하다. 감탄과 떨림만이 가득한 독서였다. 니체 전집과 전기를 읽었고, 이 불확실한 철학자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기락, 정동호, 오이겐 핑크, 하이데거를 읽고서였다. 당시 니체는 내게 문학적 메타포가 아니라 삶의 실체로 자각되었고, 내 연약한 신경은 그에 의해 달구어져 갔다. 니체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적인 삶을 말했을 때 나는 바흐와 모차르트를 듣고 있었다. 음의 질서가 희열로 전환하는 바흐, 한 음마다 세계의 즐거움이 파도치는 모차르트, 그 끝없는 유희. 나의 니체는 캠퍼스 잔디밭에서 즐거운 놀이가 되어 울려 퍼졌다.

얼마 전 ‘책세상’에서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를 처음 봤을 때, 마치 20대의 옛 애인을 낯선 골목에서 성장(盛裝)한 부인으로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역자 정동호는 ‘짜라투스트라’가 아니라 ‘차라투스트라’로 말하는데 이는 니체 번역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지적이다. 20세기 철학은 니체로부터 시작하고 분기하여 21세기 철학과 학문의 다양한 지층에 착종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온 세상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형이상학비판, 종교비판, 도덕비판으로 귀결되는 세계 뒤집기, 기존가치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라는 가치전도가 내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이는 삶의 철저한 긍정으로 허무주의에 대한 통속적 이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즉 니힐리스트로 세상과 대면하기, 이것이 지금껏 내 삶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더불어, 번뜩이는 잠언들이 때로는 그의 중심사상보다 더 깊이 내 살에 박혀 있는 것도 있다.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렇다, 나 또한 피로써 삶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이는 아직까지 내 삶의 가장 강력한 아포리즘으로 남아 있다.

다시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지금 내 삶을 강타하지는 못했다. 나는 20대의 그 고통을 이미 통과하였으므로. 청춘은 두 번 다시 흐르지 않는다. 단지 그때의 불안과 고통을 반추하고 공감하는 것으로도 나는 다시 타오른다. 여전히 니체는 나를 더 강렬하게 연소시키는 불쏘시개인 것이다. 내 생애 단 한권의 책을 꼽으라면 서슴지 않고 이 책을 택한다. ‘금강경’이나 ‘장자’가 내 삶을 마무리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차라투스트라’가 내 삶을 격발시켰다는 것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귀 밝은 니체에게 전한다. 그 모든 것이 허락되었지만 그러나 또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었던 20대, 나는 니체를 타고 청춘의 강을 건넜다고.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