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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공주 일본에 가다
이종기 지음. 책장 펴냄.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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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왕후릉의 석탑 석질이 주변과 왜 다를까?
소박한 물음 안고 문헌과 인도·일본 현장 단서 찾기
수로왕이 길조로 여긴 ‘8’-야쓰시로 ‘8개의 성’ 등 연결고리
고대사 천착한 아버지 ‘유고’ 맏딸이 정리 출간
“고대 일본 규슈 일대의 야마이(야마타이) 왕국을 세운 히미코는 가락국 공주였다. 그는 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서 난 10남2녀 중 한 명으로 남동생 선견 왕자와 함께 거북선을 타고 도래했다. 허왕후는 인도에 본국을 둔 아유타국 공주로 그를 태우고 온 길은 해양 실크로드에 속한다. 가락국은 해양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해당한다.”
<가야공주 일본에 가다>(책장 펴냄)를 요약하면 그렇다.
지은이는 이종기(1929~1995)씨, 아마추어 사학자. <히미코 도래의 수수께끼>(후타미서원, 1976), <가락국 탐사>(일지사, 1977), <춤추는 신녀>(동아일보출판국, 1997)를 썼다. 사후 10년, <춤추는 신녀>를 저본으로 하고 그의 가락국 탐사 관련 유고를 보충해 다시 펴냈다. 펴낸이는 이영아씨로 그의 맏딸이다. 영아씨는 2004년 출판을 위해 아버지의 원고를 비로소 읽어보았다면서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라 고생했지만 역추적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발문을 쓴 이진아씨는 둘째딸. 부친은 허왕후릉의 파사석탑 석질이 근처의 돌과 다른 점, 평야지역인데도 ‘포’라는 지명이 남은 점 등 소박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전했다. “원래는 한국판 <오딧세이>를 쓰고 싶어하셨어요.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코웃음을 치는 바람에 당신이 직접 쓰게 된 것 같아요.”
지은이의 작업방식은 문헌조사 및 해석과 현장답사. <삼국유사>를 기본틀로 해 <삼국지>와 <수서>, <리그베다> 등을 뒤졌고 인도 북동부 아요디아, 일본 규슈의 야쓰시로 일대를 더텄다.
“옛적 조선군이 일본을 정벌하러 간 일이 있었다. 그때 조선군은 일본의 에비야라는 들판에서 왜군과 싸워 마지막 한사람까지 전사하고 말았다. 그후 조선인은 ‘에비야’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게 되었기에 이말은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으르는 말이 되었다.” 지은이가 앞세운 이야기는 도쿄 고서점에서 마주친 <조선민담집>에서 인용한 것. 이 책의 기술 또는 논증방식인 동시에 취약점이기도 하다. 구전에는 역사기술에서 배제된 진실이 화석처럼 박혀있기도 하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것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
“한국판 오디세이 쓰려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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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쓰시로 신사 북쪽문. 한국 사찰의 모습과 단청까지 닮았다(1975년). 개축한 야쓰시로 신사 전경. 70년대 것과 비교해 외관이 화려해지고 일본풍으로 바뀌었다(2005년). 책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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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여왕의 경계가 모두 끝나고 여왕국 남쪽에 구노국이 있는데 여왕에게 소속되지 않는다.”(삼국지 왜왕전) 지은이는 규슈의 에비노 고원이 야마이국과 토착세력인 구노국의 접경이라고 비정한다. 야마이국의 조선군이 구노군군사에 의해 낯선 화산지대로 유인돼 대패하였는 바 그 결과가 ‘에비야 공포담’으로 남은 거라고 본다. 하지만 ‘에비야’에는 또다른 어원이 있다.
“임진란 때 왜군은 전리품으로 조선군의 코나 귀를 잘라갔다. 운반의 편리 혹은 잔인성의 과시를 위해서. 나중에는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의 것까지 베어가면서 조선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부터 귀·코를 베는 사람들이 들이닥쳤다는 의미의 ‘이비(耳鼻)’에 호격조사 ‘-야’가 붙어서 도망가라 피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건 그렇고.
별포 나루에 상륙한 허왕후가 속곳을 벗어 산신령한테 드렸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 <리그베다> 중 혼인의 노래 28, 29장을 비교한 것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혼전에 처녀막이 손상된 색시가 핏자국을 미리 묻힌 속곳을 입고 초야를 치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부가 신방에 들기 전 신랑쪽에서 마련한 속곳으로 갈아입는다’는 인도의 풍습과 연결한 것이다.
수로왕릉 정문 위에 보이는 물고기 문양의 장식판 역시 인도 현지를 답사하고 인도 고고연구청 데세판테 박사를 통해 고증을 받아 아유타(아요디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문양과 일치함을 확인한다. 또 고대 아요디아의 도시 형상이 거대한 물고기 모양이었다, 물고기 장식은 갠지스 강이 범람해 집에 물이 들었을 때 집안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믿음에서 그려놓은 것임을 확인하고 왕릉의 쌍어문은 김해시 동쪽 신어산과 함께 출신지 인도의 상징성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해석한다.
책의 2/3는 규슈 시모노세키 야쓰시로 답사기. 빌린 자전거, 카메라 두대, 5만분의 1 축척 지도를 가지고 히미코의 유적, 특히 그의 무덤을 찾는 이야기다.
한국 사찰과 흡사한 외양에다 단청까지 한 야쓰시로 신사. 쿠마가와 강 어구의 옛 지명 가메바네(龜彈, 거북나루). 벼와 연꽃을 모시는 이나리진자(稻荷神社). ‘여덟 개의 성’이란 뜻의 야쓰시로와 수로왕이 도읍을 정할 때 길조라고 여긴 숫자 8 등에서 연결고리를 찾는다. 지은이는 궁성터에서 동북방 15도선 상에서 원형의 큰무덤을 발견하고 히미코의 무덤이라고 확신한다. 김해당 수로왕릉의 위치와 똑같고 크기도 비슷하다는 것. 원분 가장자리 두세발짝 간격으로 통대나무가 세워져 있는 것을 순장자가 묻힌 곳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현지 고로는 ‘시조님과 함께 전사한 종자들의 무덤이다’라고 주장한다.
어원·복식에서 삼한의 흔적 읽어
수륙 양편에 살며 오이를 즐겨먹는 상상의 동물 갓파(河童) 도래비. 그곳 토박이들의 발음 ‘가랏파’에서 ‘가라의 무리’라는 뜻으로 추정하고 ‘오레오레 데라이다(오래오래 되어지이다)’ 구호를 외치며 축제를 올렸다는 구전에서 도래인 3천명이 상륙한 때의 정경을 상상한다.
종유동 속 화강암 아난도상의 고깔모자에서 변한인의 복식을, 움푹 팬 뒷벽의 붉게 녹슨 쇠똬리에서 비밀 제련소 자리임을 읽어낸다. 레이후신사에서 발견된 태상왕의 납작머리에서 삼한시대 한반도 지배층의 상징을 추론한다. 규슈 중앙산지 이츠키에 남은 3박자 자장가도 변진 후예의 유적이라고 본다.
주장과 상상, 추정은 증거가 박약한 고대사 연구에서 어쩔 수 없는 일. 또 고대사 연구는 일본인들의 역사조작, 특히 한-일 관계사 조작이나 중국의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처럼 국익과 관련된 만큼 국가주의적 경향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잊혀진 가락국의 영화 복원, 해상 실크로드의 숨은 그림찾기 작업을 중·일 역사계의 행태와 같은 선에 놓을 수는 없지 싶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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