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6 20:58
수정 : 2006.07.0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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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W.H.베일리 지음. 최경화 옮김. 아트북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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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독서
우리는 대개 그림에 끼운 액자를 틀로 본다. 주위 풍경으로부터 그림을 분리해 좀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각 기능적 장치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새김, 무늬 등을 달고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으로도 여길 수 있다.
30년 이상 뉴욕에서 액자 장인으로 일해온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런 액자의 기능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액자는 잊고 지나치는 컴퓨터의 여러 기능처럼 숨겨진 의미와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화가나 소장자의 생각이 덩어리째 기록된 장치이며, 그런 맥락에서 당대 시대상과 삶이 녹아있다. 또 그림의 의미나 도상을 확대, 축소시키는 감상의 다른 창이 된다.
서양 액자의 모티브가 된 중세 제단 장식물에 대한 1장부터 그림 장식, 화가의 심리, 그림 내용과의 연관관계, 화가의 디자인 개입, 수공 방식 등에 따라 갈래지어진 고금 미술사의 명화 40여 작품이 7장에 걸쳐 나온다. 중국의 선사시대 단지, 고대 그리스 도기의 기하학 틀 문양에서 기원을 찔러보고 11세기 비잔틴 시대 미카엘 대천사 복음서의 표지, 그로테스크 문양으로 위엄을 더한 벨라스케스의 초상 액자, 낭만주의 대가 프리드리히의 십자가 예수상을 부각시키는 야자수·천사상 액자, 괴짜 뒤샹의 ‘알몸녀’ 엿보기 설치물인 <에탕도네>의 아치문 등을 거치는 액자의 미술사다. 호사 취미 대신 그림에 녹아든 당대 사회상과 삶에 대한 진지한 탐색, 도상의 핵심 이미지와 이면의 숨은 이야기들을 독해하는 안목은 거의 ‘미술사가’급이다. 절제된 인물상을 꿈틀거리는 포도넝쿨 액자로 둘러싼 앵그르 작 <무아테시에 부인의 초상>에서 19세기 중엽 프랑스 사회의 이상과 세속적 욕망의 긴장을 끄집어내고,휘슬러 작품 액자의 나비 문양에서 그림의 평면화를 좇는 모더니즘의 의지를 감지해내는 내공이라면. 기고가 애덤 곰닉의 서문처럼 “그림과 액자가 벌이는 힘의 줄다리기를 보고 느낄”줄 알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힘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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