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작고한 정치학자 전인권씨 유고 평전
독재자인가, 영웅인가를 두고 한국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논쟁이 일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평전이 출간됐다.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박정희 평전'(이학사 펴냄)은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인권(1957-2005) 씨의 유고 평전이다. 이 책은 그동안 다수 출간된 박 전 대통령 전기물과 다르게 비평을 가미한 평전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 전씨는 박정희의 성장 과정과 경험을 짚어보면서 그의 삶과 사상을 '심리적 고아'라는 개념으로 분석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박정희가 대구사범 재학시절 심리적 고아가 됐다고 주장한다. 심리적 고아란 박정희 자신이 적극적으로 가족관계로부터 이탈해 행동한 것을 뜻한다. 책은 이후 박정희의 행동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는 '권위체'로 투신함으로써 존경할 만한 선배, 역사적 위인, 국가, 단체 등에 대한 강력한 존경과 숭배로 나타났다고 해석한다. 궁극적으로 보면 박정희가 가진 '심리적 고아'의 특성은 5ㆍ16 쿠데타와 유신 추진 등에 결정적 영향을 줬으며, 그의 국가주의적 정치사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대통령이 된 뒤 경제와 안보를 강조하게 된 것도 바로 심리적 고아의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전씨는 심리적 고아와 함께 박정희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년시절의 '유기 불안'을 꼽는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경제적 무능, 이에 대립하는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헌신, 명랑함이 결여된 형제관계 등이 원인이라는 것. 박정희의 정치사상인 '국가주의'도 성장 과정에서 겪게 된 정신적 불안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결합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박정희가 어린 시절 체험한 가난은 결국 근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낳았으며 훗날 자립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연결된다. 박정희의 삶을 통해 가장 두드러진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영웅 숭배, 횡적 인간관계가 아닌 종적 인간관계에 철저했던 성향, 조급한 계몽주의 등으로 정리한다.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인 그에 대해 "사망한 직후 한동안 '버림받은 독재자'였다가 이제 '박제된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 상황은 (중략) 박정희가 상정했던 약육강식의 현실세계의 반영이란 점에서 흥미로운 역사의 반복을 보여준다"는 말로 끝맺었다. 한편 책 발간을 준비한 '고 전인권 박사 유고집 간행위원회'는 이번에 그의 유고 평론집 '전인권이 읽은 사람과 세상'을 함께 펴냈다. 비평집에는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던 전씨가 이중섭과 정경자를 조명한 글에 이어 1997-1999년 정치인에 대해 '신동아'에 기고한 글, 사망하기 전 5개월 동안 축구선수 이천수, 탤런트 채시라 등을 인터뷰해 '월간중앙'(2005년 1-5월)에 연재한 글 등이 실렸다. 정치학자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했던 전씨는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2000), '남자의 탄생'(2003), '독립신문 다시 읽기'(2004) 등을 썼으며 지난해 8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평전' 438쪽, 1만6천원. '전인권이 읽은 사람과 세상' 518쪽, 1만8천원. 김정선 기자 js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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