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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하고 문학적인 글로 과학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던 레이첼 카슨은 화려한 직함은 없었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시대를 꿰뚫는 문제의식으로 20세기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꾼 중요한 책을 썼다. 카슨이 인생 후반부를 바친 책 <침묵의 봄>은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해 세상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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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에 땅이 오염되고 나무가 시들고 새가 오지 않는
이제껏 우리가 달려온 길의 끝이 ‘침묵의 봄’이라면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의 끝은 ‘지구의 보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시인 과학자의 경고
고전 다시읽기/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한 사람의 여행자가 되어 오래 서성거리며, 한 쪽 길이 덤불속으로 감돌아간 데까지, 가능한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어쩌면 더 나을 지도 모를 길을…”
로버트 프로스트는 삶이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지 못한 첫 번째 길을 아쉬워하며 다음 날을 위해 이 길을 남겨두지만, 길은 언제나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누구나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 그저 자기가 선택한 길이 더 나은 길이길 바라며 숲으로 계속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은 달라진다.
삶은 두갈래 길 중 하나 선택하는 것
1962년에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류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마치 시인처럼 읊은 책이다. 카슨은 인류가 ‘성장’과 ‘개발’이라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비록 카슨은 화학적 방제로 해충을 박멸하려던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되었는지를 주로 조사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우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인류가 택한 길이 결국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오염시키고, 나무들을 시들게 하고, 지저귀던 새들마저 떠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침묵의 봄’을 불러올 것임을 예언하였다. 나비가 없으니 꽃도 피지 않고, 새들이 없으니 봄도 오지 않는 그런 죽음의 적막만이 가득한 인류의 미래를 말이다. 카슨은 원래 시인을 꿈꾸었던 문학도였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스프링데일이라는 목가적인 고장에서 태어난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과정을 마치게 된다. 카슨은 1930년대에 미국 전역을 휩쓴 경제공황과 여성과학자에 대한 과학계의 편견으로 박사과정을 중단한 뒤 대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해양과학에 관한 대중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새소리가 사라진 자신의 정원에 관한 한 여성의 편지를 받고, 마침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합성화학 살충제의 폐해를 파헤치게 되었다. 오랜 조사과정을 거쳐 4년 만에 완성된 <침묵의 봄>은 발간 즉시 높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음으로써 무차별적인 살충제 사용에 관한 반성과 화학산업계의 거센 반발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과학적인 자료조사와 서정적인 문체로 DDT를 비롯한 화학살충제의 생태계 파괴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침묵의 봄》은 생태학의 고전으로 널리 애독되게 되었다. 무엇보다 카슨의 남다른 점은 전체를 볼 줄 아는 그녀의 시적 상상력에 있다. 그녀는 미국 전역의 무차별적인 디디티(DDT) 방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지맞는 시장이 필요했던 화학산업계와 기업과 연결된 미국농무부와 같은 정부관료들, 또 기업과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과학자들 간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결탁이었음을 너무도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 식물이나 곤충을 박멸하기위해 뿌려대는 살충제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정 생물에게만 작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독성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어가 물고기와 곤충, 새들과 인간에게로 순환하며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킨다는 것도 볼 줄 알았다. 지금도 생태보호 운운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빨갱이’라고 일부신문에서 몰아세우는 데, 40년이나 전에, 그것도 기업발전으로 풍요로운 미국건설에 여념이 없던 냉전적 상황에서, 더구나 남성중심 과학계의 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의 몸으로 그토록 용기 있게 주류세력들과 맞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냉전·성차별 사회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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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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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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