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7.14 19:51 수정 : 2006.07.14 19:51

미 정치학회·사회학회 회장 동시에 역임한 유일한 학자
좌우 넘나들며 이론 구축 한국 좌우파 모두 영향권

세이무어 마틴 립셋은 미국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통로다.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기묘하고 독특한 학문적 세계를 지녔다. 그의 사상적 편력은 미국 지성사를 대표한다.

립셋은 미국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동시에 역임한 유일한 학자다. 세계 사회과학계의 ‘대부’로서 자타가 공인하는 두 자리를 번갈아 차지했으니 립셋의 학문적 성취는 불문가지다. 계층계급적 분석을 통해 정당과 민주주의 문제에 천착한 그를 빼놓고는 미국 사회과학을 말할 수 없고, 미국으로부터 결정적 영향을 받은 한국 정치학과 사회학을 논할 수 없다.

그가 쓴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펴냄)가 국내에 번역됐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 좌파와 우파를 동시에 살펴볼 기회다. 그의 저술 가운데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사상적 편력은 더욱 흥미롭다. 원래 립셋은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좌파 학자였다. 스탈린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과정에서 미국 좌파 지식인 내에서 ‘반스탈린주의 분파’를 대표하게 됐다. 그러나 60년대에 등장한 미국 신좌파의 ‘반국가주의’ 성향과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공화당의 구보수주의와 친화성을 발휘한다. 민주주의·인권 등의 가치를 미국 외부에 전파시키는 적극적 구실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공화당 우파와 만난 것이다. 실제로 네오콘 1세대의 대부분은 이후 레이건·부시 정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네오콘 2세대를 창출했다.

그러나 정작 립셋은 레이건 정부 출범을 전후해 ‘동료 네오콘’들과도 결별했다. 그는 시장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유럽 사민주의의 복지프로그램을 미국에 뿌리내리는 데 관심을 둔다. 립셋은 “레이건과 대처는 네오콘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통 신보수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고전적 시장자유주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러 정치학 이론을 내놓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이에 걸맞은 사회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테제가 그의 작품이다.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우파들이 즐겨 사용하는 레토릭이다. 립셋 역시 근대화론자였던 셈인데, 역사의 진보를 사회경제적 토대로부터 찾았던 카를 마르크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미국 예외주의〉를 비롯한 립셋의 여러 저술에는 마르크스가 즐겨 인용된다.

“한국의 정당구조는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주장도 립셋의 방법론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다. 립셋은 “사회는 갈등으로 이뤄졌는데 이를 억압하면 더 급진화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을 정당을 통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등을 정당체제 안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립셋의 방법론을 최 교수는 한국적 현실에서 더 ‘급진화’시킨 셈이다.

지난 2000년 립셋은 그의 마지막 저술인 〈민주주의 세기>(Democrtatic Century)를 집필하다 쓰러졌다. 그의 제자들이 모여 책을 완성하긴 했지만, 1922년 태어나 여든을 넘긴 그가 또다른 글을 남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1995년에 출간한 〈미국 예외주의〉는 립셋이 손수 완성한 사실상의 최후 저술이 된 셈이다. 이 책을 보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악마’와 싸우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미국인들의 종교적 열정을 적나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실은 립셋 스스로가 그렇게 살았다. 그를 사랑할지 미워할지는 나중의 문제다.

안수찬 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