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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0 19:10 수정 : 2006.07.21 16:22

신윤주/아나운서

나는 이렇게 읽었다/도쿄가족

<도쿄가족>은 목요일 밤 아쉽게 끝나는 수목 미니시리즈만큼이다. ‘아아, 또 한 주를 기다려야 하다니…’ 시청자를 애태우는 인기 드라마처럼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한 장편 소설이다. 우연히 서점에서 머리를 식힐 만한 소설을 고르다가 1권만 집어 들었다. 1권만 읽어도 대충 내 감정의 배설은 도와주리라는 심산이었다.

일본 판 <바람난 가족>이라고 할까. 원제 역시 <바람의 행방>이며,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 소설들이 범하곤 하눈 오류는 보기 좋게 벗어난다. 가족에 대해, 행복에 대해 그리고 지나간 시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요시미네 식구들의 소박하고 정겨운 이야기다.

요시미네는 도쿄에서 보기 드물게 3대가 모여 산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의 할아버지는 제국주의 시대 일본에 대한 향수를 가졌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무사 정신이 살아 있던 그때야말로 질서가 바로 잡혔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할머니가 자유 선언을 하고 집을 나가 할아버지는 산골 마을에서 별거생활에 접어든다. 환갑을 넘긴 할머니는 댄스교실이다 문화강좌다 바쁘게 다녀보지만 몸에 익지 않은 ‘자유’가 부자연스러울뿐이다. 아빠는 한번의 ‘바람’으로 세련되고 똑 부러진 아내와 이혼하고 스무 살 연하의 부하 직원과 재혼한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정체성감옥에 갇혀 있던 엄마 미호는 누가봐도 빠질 데 없는 인텔리다. 하지만 뒤늦게 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늘 주장했던 ‘동등한 사랑’의 값을 톡톡히 치른다.

자고 일어나 보니 누나 같은 여자가 엄마가 되어있고, 할아버지의 기합소리 대신 구관조가 꽥꽥거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아침. 요시미는 어른들이 저질러 놓은 가족 아수라장에서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인다. 어른들은 요시미가 잘 받아들여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 잊은 것일까? 그들도 요만한 시절 어른 못지 않은 감정의 결이 있었고, 어른들이 느끼는 분노 그 이상의 것을 삭히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혹은 표현해 봤자 변화가 없을 것같아 포기하는 것을.

지은이는 1923년생이다. 80대 할머니가 쓴 글이지만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너무나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요시미의 마음에 동화되게 만든다. 또 사랑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마치 지금 내게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불어지게 만든다. 이쯤 되니, 얼른 서점으로 가서 나머지 2권을 거머쥐고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족해체와 더불어 교권추락과 집단 따돌림도 도쿄가족의 현안이다. 요시미는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다 본인 역시 왕따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요시미는 가족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는다. 말해봤자 바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 같은 것은 불타버리는 게 낫다고 요시미는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가족의 힘을 말없이 보여준다. 요시미를 산속 마을로 불러들여 정신교육으로 무장시킨다. 인간의 근본에 대한 가르침. 예전의 구닥다리 해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우려를 뒤로 한 채, 요시미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주신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도쿄, 일본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고 역설한다.

도쿄가족은 사라져 가고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입맛 까다로운 아버지가 좋아하는 두부를 사려고 돌아가는 길을 마다 않고 굳이 ‘그 두부’를 사오시는 어머니. ‘그 두부’가 ‘그 두부’인줄 알아채고는 “아…맛있다” 말씀하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내외와 손자는 식사 자리에서 모락 모락 피어나는 가족의 힘을 받는다.

신윤주/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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