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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
필립 폼퍼 지음. 윤길순 옮김. 교양인 펴냄. 2만4000원 |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악한 수단 불사한 음모가 문제적 인물로 본 혁명의 이면
혁명가의 관심사는 혁명뿐. 자기만의 감정도, 애착도, 재산도 없다. 이름조차 없다. 사회질서, 교양세계와 단절했으며 그 세계의 법, 규범, 도덕, 관습과 손을 끊었다. 그가 아는 과학은 오직 파괴. 혁명을 돕는 게 도덕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부도덕이며 범죄다. 그는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늘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그의 동지는 혁명성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우정은 혁명에의 쓸모로 결정된다. 동지와 논의는 함께하되 실행은 혼자한다. 그는 가처분 부하 여럿을 두어야 한다. 동지의 구출도 손익을 따져서 한다. 혁명가는 공적인, 신분질서의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그곳에 침투한다. 이때 다른 사람으로 위장한다. 처단 대상자 명단을 만들어 순위대로 제거한다. 일순위는 혁명에 해가 되는 사람. 짐승같은 놈은 그 해악이 인민반란이 일어나도록까지 살려둔다. 이용가치 있는 고위직은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 입만 산 동료는 머리가 빠개지도록 일을 시켜야 한다. (<혁명가의 교리문답> 발췌) 가장 강력한 혁명가들의 행동지침인 <혁명가의 교리문답>을 만들어 100여년 혁명의 역사를 음양으로 지배한 세르게이 겐나디예비치 네차예프(1847~1882). 러시아의 소읍 출신인 네차예프의 전성기는 스물두 살부터 여섯 살까지(1869~1873년) 겨우 5년. 1869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청강생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가는 카라코조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 암살미수 사건 이후 경찰의 보복과 연이은 체포로 무시무시한 분위기였다. 그는 동료학생들과 자신의 집에서 의식화 교육을 하고 차르 암살계획을 세웠으며 <혁명을 위한 행동강령>을 기초했다. 음모가의 싹수는 이때부터. ‘집회의 자유’ 청원을 구실로 동료 97명의 서명을 받은 뒤 여차하면 찔러 제적시킨다며 시위에 끌어들였다. 물론 쫓겨난 학생들이 급진적으로 변하고 지방으로 흩어지면 농민에게 여파가 미칠 거라는 계산을 했다. 당국에 출두했다가 돌아와서는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것처럼 동지들을 속였다. 그리고는 값높이기 잠적전술. 동료들은 그가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로 끌려간 줄 알았고 당국이 그의 체포를 부인하면서 그는 지하운동 조직에서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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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위해서라면 사기꾼, 음모가, 공갈범이라 한들 어떠랴. 수많은 혁명의 모습 가운데 하나인 네차예프는 혁명의 복합성을 얘기하는 동시에 젊음을 껴안지 못한 불행한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기도 하다. 사진은 1872년 스위스에서 체포되기 직전에 찍은 것이다. 교양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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