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0 21:20
수정 : 2006.07.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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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나침반
셸던 램튼·존 스토버 지음. 벙병선 옮김. 시울 펴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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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여 흡연의 금기에 맞서라’ 담배회사 매출 올려주고
‘발암물질 규제하면 일자리 줄어든다’ 화학업계 옹호
거대기업 대변인 노릇 하는 ‘전문가’들의 못된 행태 고발
거대기업과 전문가들은 어떻게 정보를 조작하는가? <거짓 나침반>(시울 펴냄)의 한국판 부제다. 원제
는 ‘믿어줘, 우리가 전문가야!’ 쯤 되겠는데, 그러면 거대기업과 전문가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믿게 만들까? 그리고 과연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다 믿을 수 있을까? 또 국가기관, 대학은 믿어도 좋은가?
발암물질인 염화비닐에 대한 미국 정부 규제안이 나오자 업계는 규제안이 실행될 경우 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650억달러의 비용이 추가로 들게 될 것이라며 죽는 시늉을 했다. 화학협회는 연방기준은 업계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연방기준이 강행됐으나 화학업계는 계속 번창했고 일자리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비용은 업계가 애초에 호들갑떨었던 추산액수의 5%밖에 지출되지 않았다.
치명적인 위험성을 지닌 화학물질 염소 사용과 관련한 예방조처 실시 여부를 두고 벌어진 이른바 ‘염소전쟁’ 때는 염소화학위원회, 염소연구소, 화학제조업체협회, 플라스틱연구소, 전국제조업협회, 미국 상공회의소 등 업계 거포들이 줄줄이 나섰고 그들 대변자는 외쳤다. “예방원리 자체가 우리의 건강과 높은 생활수준에 위협을 가한다.” ‘우리’란 아마 기업 경영자와 그들 편에 붙은 전문가들 자신을 가리키겠거니. 이 자는 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이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을 오히려 하락시켜 더 많은 빈곤,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보험 없이 살게 되는 상황, 의료혜택의 전반적 축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엄살까지 떨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로, ‘홍보의 아버지’라는 전설의 주인공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1929년 자신을 고용한 미국 담배회사로부터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게 만들라는 임무을 부여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성 흡연은 ‘여자답지 못한 처신’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사회분위기였단다. 그는 여성참정권자들을 담배산업을 지지하는 ‘제3자’로 활용했다. 담배를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만들어 불리한 요소을 오히려 장점으로 단번에 뒤바꿔버리기로 작정했다.
폐해 연구 ‘쓰레기과학’이라 매도
그는 그해 뉴욕 부활절 행진에 여배우 열명을 동원해 여성 불평등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로 담배를 피워 물게 만들었다. 버네이스는 그들을 ‘자유의 횃불’ 여단이라 띄워올렸다. 신문들이 1면에 그 ‘자유의 행진’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몇 주에 걸쳐 많은 사설들이 흡연의 금기에 맞서 행진했던 젊은 여성들의 행위를 찬양하거나 매도했다.” 여성들이 떼를 지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불과 몇 주 뒤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은 그때까지 남성전용이던 흡연실을 여성에게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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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환경오염·발암물질들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속에서 버젓이 생산 유통되고 있을까. 지난 6월 하순 서울환경연합 회원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한국 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막대감자튀김을 가득 문 인형을 들고 나와 발암가능물질 아크릴아마이드 사용을 자제하도록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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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까지 담배회사들은 의사와 명사들의 증언 형식을 통해 담배가 건강상의 혜택을 가져다준다고 광고했다. 60년대 미국 공중위생국이 “이 나라의 질병, 장애, 조기사망의 가장 커다란 원인”으로 담배를 지목한 이래 담배업계는 자체기구와 홍보대행기업들, 동조업계들을 동원해 지금까지 기발하고도 엽기적인 대응전략을 끈질기게 펼쳐왔다. 업계는 이를 위해 ‘쓰레기 과학’과 ‘건전 과학’이라는 상징조작도 감행했다. ‘쓰레기 과학’이란 기업쪽 변호사들, 로비스트들, 홍보회사들, 산업계의 자금지원을 받는 싱크탱크들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환경과 대중의 건강을 보호하는 규제안들의 바탕이 되는 연구에 갖다 붙이는 용어다. 반대로 환경과 공중보건 보호조처에 이의를 제기해서 무효화하고 폐기하는데 동원될 수 있는 연구에는 ‘건전(분별있는) 과학’이라는 정반대 용어를 붙였다.
설탕과 지방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물의 위험성과 폐해를 경고해온 비영리단체 공익과학센터가 영화관에서 판매되는 팝콘에 지방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이탈리아 음식 페투치니 알프레도와 살이 안찌는 지방으로 선전된 올레스트라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전국식당연합회쪽은 홍보전문가를 고용해 “과학의 과대망상을 악용한 초절정 야수”라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업계는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싱크탱크, 전문가, 관리, 언론 등 ‘제3자’들을 동원하고 엄청난 자금을 풀었다. 프록터 앤 갬블 등이 유력 광고주인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타임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유에스에이 투데이> <디트로이트 뉴스> <리더스 다이제스트> <뉴리퍼블릭>이 공익과학센터를 공격하는 전문가 칼럼들을 잇달아 실었다.
유사한 패턴이 규폐증과 석면, 납, DDT·PCB·염화비닐·벤젠 등 화학물질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어졌다. 군사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미 원자력위원회는 핵 안전에 관한 사회적 불안을 호도하기 위해 핵물질 자체의 위험성과 이용 한계 등 근본문제는 도외시한 채 엉뚱하게도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동원하는 ‘싸구려 프로이트주의’적 접근으로 “인간 자체의 심리적 본성을 탐구함으로써만 설명할 수 있다”며 “죽음의 재에 대한 두려움이 핵폐기물과 인체 배설물 사이의 상징적 관계에서 나온다는 강력한 결론이 도출된다”는 따위의 헷갈리는 소리를 했다.
전문가 동원은 홍보전략
비영리단체인 미디어민주주의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 존 스토버와 셸던 램튼이 말한대로 이 책은 “텔레비전 뉴스나 과학적 토론자 집단이라며 얼굴을 내미는 전문가들을 동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업계 등의) 홍보전략을 폭로하고, 이런 조작행위들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가정들을 파헤치기” 위해 숱한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시민들을 격려하며 맺는다. “(환경과 생태보존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시민들은 흔히 의사방해자 또는 진보에 저항하는 세력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러나 진짜로 진보를 대변하는 세력은 우리들이다. 우리는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사회적 진보를 대변한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전문가들이다. 어떤 칭호나 다녔던 대학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속에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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