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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약국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마음산책 펴냄. 1만원 |
그는 왜 전화하지 않는걸까? 나는 왜 나쁜 남자만 만날까?
젊은 언어학자가 ‘언어’를 통해 꿰뚫어본 연애학
‘사랑은 말 안하면 모른다’는 가설에서 시작해
연인들끼리의 농담·소통 등 ‘경우의 수’ 51개 진단
#그는 자주 만나자는 법이 없다. 전화도 잊을만 하면 한번씩 한다. 하물며 ‘이벤트’를 바랄까. 참 무심한 사람이라고 푸념하기엔 내 청춘이 아깝다. 우린 정말 사랑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왜 다들 명품을 좋아하는지. 단지 우아하고 고상한 스타일을 원했을 뿐인데…. 주머니 사정상 여성 취향을 바꿔야 하는걸까?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린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보내온다. “헤어졌으니 그만!” 외쳐도 아랑곳 없다. 스토커로 변신한 옛애인을 어쩔까나.
연애로 인한 편두통을 앓고 있는 이런 청춘남녀는 <로맨스 약국>(마음산책 펴냄)에 가보자. 365일 24시간 개점. ‘연애의 언어에 대한 51개의 처방전’ 있음. “때로는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가고 때로는 독감처럼 오래 앓게 하는, 백신도 없는, 감염률 100%의 질병.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을만큼 심하지 않고 완치되지 않아도 그냥 살아갈 수 있지만 가끔 마음에 반창고 한 개가 필요하다”면 말이다.
연애로 인한 질병 치유에 나선 ‘약사’는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언어학자 박현주씨. 일리노이 주립대 언어학과 박사 과정중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번잡한 세상사를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취미’를 십분 살려 사람들이 연애를 어떻게 앓고 있는지 꿰뚫어봤다. 진단시약은 ‘언어’. 연애 9단이 되는 비법을 전수하는 다른 ‘연애학’ 책들과의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다. 하필 언어인가. 연애는 남녀간의 관계이고 관계의 이음새는 언어, 언어로써 아파하고 언어로써 낫게 하고자 함이 저자의 바람이다. ‘연애의 언어학’이라고 하면 통사론이니 음운론이니 하는 전문용어를 떠올릴텐데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20~30대가 공감할 대중문화 텍스트와 저자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연애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지적 통찰에 이르니, 신세대 저자의 소통하는 글쓰기가 연애라는 주제와 썩 어울린다.
‘사귄다’는 말은 연애의 시작점
사람들은 내사랑만은 특별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제3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모든 연애는 일정한 패턴 속에서 변주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업 멘트는 대체로 뻔할뻔. “제 첫사랑과 닮으셨어요” “이건 당신에게만 털어놓는 말이야” “말 안해도 알지?” 한번쯤 들어보거나 해봤을 것이다. 진부하게 반복되는 이런 말들 속에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본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언어학자가 보기에 ‘사귄다’는 지점은 언제부터일까. 눈 맞추면? 손 잡으면? 눈치챘을 거다. 바로 “우리 사귈까”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발화’를 시작점으로 본다. 연애라는 모호한 감정 게임에서 ‘선언이 없는 관계’는 발뺌하기 십상. 선언으로서의 말은 거대한 울림을 지닌다. 말의 구속력은 서로의 관계를 책임 지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식이라면 관계가 파기될 때 뒤로 숨기에 딱 좋다. “실은 널 사랑하지 않았어”라고. 그런데 ‘사랑과 우정 사이’인 유사연애단계라면 외려 말을 하면 깨진다. 둘 사이에는 우정보다 설레는 ‘화학반응’은 있지만 로맨스는 아니라는 묵시적 합의가 있기 때문인데 어느 한쪽이 “사귈까?”라고 입을 떼는 순간 부담없고 가볍던 관계는 일그러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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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꽃이다. 우리의 삶을 꽃피웠다가 지게도 하고 기운을 북돋웠다가 다시 병들게도 한다. 사랑은 불이다. 연애의 온도는 사람의 기질과 관계의 밀도에 따라 다를지라도 사랑하는 모든 이의 마음 속에는 장작불이든 모닥불이 불이 있다. <로맨스 약국> 본문속 노석미씨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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