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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3 20:26 수정 : 2006.08.04 14:30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데이비드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1만8000원

플라톤·칸트·마르크스에서 유교·힌두교까지 10가지 사상틀로 본 인간의 본성

요즘 철학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침을 찾겠다고 하면 비웃음을 사기 쉽다. 철학은 존재와 진리 그리고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지 한낱 인생론을 위한 게 아니라는 핀잔을 듣거나, 공허한 말장난에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을지 모른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이들에겐 ‘노 철학자의 인생론’ 따위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기껏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주장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침을 제시하려는” 책이 나왔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갈라파고스 펴냄)이다. 1970년 초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의 초보 철학강사로 발을 들여놓은 레슬리 스티븐슨은, 필수과목이라 어쩔 수 없이 강의를 듣는 대학 1학년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썼다. 7가지 이론을 다룬 이 책은 81년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가지 이론>으로 한국에도 소개됐다. 30여년이 흐르면서 데이비드 헤이버먼 미국 인디애나 대학 종교학 교수가 쓴 유교와 힌두교 이론이 더해지고 10가지 이론의 종합을 시도하는 결론도 붙여졌다.

인간이 무엇이냐는 건 위대한 철학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수많은 문제들과 얽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책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다. 각각의 이론에 대해 먼저 우주안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을 따져보고, 둘째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론을 정리하고, 셋째 인간의 약점에 대한 분석을 평가한 뒤,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처방을 다룬다.

10가지 이론이 제시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유교는 인간이 운명을 제어할 수는 없어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힌두교는 궁극적인 자아는 다른 존재와 별개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로 연관된 실재의 그물망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인간을 신의 형상에 따라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도록 창조됐다고 규정한다. 플라톤에게 인간은 ‘형상’에 대한 지식을 지닌, 소멸되지 않는 영혼과 육체로 이뤄진 존재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은 ‘추론을 비롯한 어떤 독특한 능력의 집합’인 영혼 혹은 정신이 덧붙여진 동물이다. 칸트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그리고 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마르크스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존재로 본다. 프로이트에게 인간은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며 생물학적 충동에서 비롯된 원인에 의해 의식이 결정되는 존재지만, 사르트르에겐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다. 진화론자 다윈을 따르는 이들은 인간을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점차 진보 또는 변화해가는 존재로 본다.

이렇듯 서로 다르게 규정하기에 진단과 처방 또한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이를 종합해서 인생의 지침을 제시한다는 건 불가능한가? 저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칸트의 사상 체계야말로 우리가 다른 이론들에서 각기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하나의 아무 모순없는 전체적 견해로 통합하는 데 포괄적이고도 적절한 틀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모든 이성적 존재를 향한 존중이라는 ‘도덕적’ 원칙에 호소했다. 이로써 인간의 권리와 욕구에 대한 인식이 제기되고, 이를 억제하는 것들에 대한 반대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 정도를 인생 지침으로 받아들이기엔 사람들의 신념이 너무 견고하거나 냉소가 너무 심하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들의 신념이나 믿음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다른 이론과 비교해보자고 제안한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믿음과 행동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부여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돌아왔지만 이것이 서론에서 설득력있게 제시되는 대전제다. 15쪽 분량의 서론은 하다못해 서점 한 귀퉁이에 서서라도 꼭 한번 읽을 가치가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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