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03 20:57
수정 : 2006.08.03 20:57
북한본 ‘겨레고전문학선집’ 17~20권
패설·야담·소설·민담 등 묶어 출간
돈 많은 내시에게 시집간 여자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비단과 패물을 보자기에 싸서 이고 집을 나섰다. “초가지붕 아래서 베 이불을 덮고 자고 나물죽을 나누어 먹더라도 진짜 사내와 사는 게 인생의 더없는 낙”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한 번 머리를 얹은 처지인지라 여염집 본처 되기는 포기한 그의 눈에 길 가는 중이 포착된다. 막무가내로 따라붙어 2박3일을 동행하다가 기회를 보아서는 “무작정 대들며 중의 허리를 그러안”는다. 처음에는 씨근거리며 자못 눈물 바람까지 하던 중은 결국 여자의 육탄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내시의 아내와 파계한 스님이 부부가 되어 살아가게 된 사연이다.
보리출판사에서 북쪽 출판물을 계약에 따라 내고 있는 ‘겨레고전문학선집’ 제20권으로 나온 <내시의 안해>에는 그 뒷이야기도 나온다. 두 사람의 사연을 듣고 난 한 길손의 품평이다: “나라에서는 응당 옛날의 금령을 다시 강조하고 내시의 집에 썩고 있는 한 많은 여인들을 모두 내놓아 젊은 중들과 짝을 맺어 주어야 할 것이오.” 종교 모독의 혐의가 없지 않지만, 솔직하고 당당하게 욕망을 긍정하는 근대적 태도가 돋보인다.
2004년 11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처음 낸 이래 그동안 모두 13권이 나온 ‘겨레고전문학선집’의 제17~20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설화집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와 패설집 <거문고에 귀신이 붙었다고 야단>과 <폭포는 돼지가 다 먹었지요>, 그리고 야담집 <내시의 안해>가 그것들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같은 역사서에서부터 <역옹패설> <패관잡기> <어우야담> <잡기고담> 등의 옛 책에서 뽑은 이야기들이 묶였다. 남쪽에서도 출간된 <삼국유사>와 <열하일기> 등의 번역자 리상호, 벽초 홍명희의 아들이자 소설가 홍석중씨의 부친인 국어학자 홍기문, 김찬순, 김세민 등 북쪽의 일급 학자들이 번역에 참여했다. 뒷날 패설과 야담, 소설, 민담으로 변형되면서 이어져 내려 온 겨레 이야기의 원형에서부터 근대적 단편소설의 면모를 보이는 산문 작품들까지 여름밤에 읽기에 맞춤한 이야기들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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