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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4 19:14 수정 : 2006.08.04 19:14

북의 미사일 발사와 함께 대북 경제제재 조처가 강화되면서 ‘북한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매코맥은 특히 북한에 대해, 긴장을 불러오는 ‘워싱턴-평양’ 축을 협력을 강화하는 ‘서울-평양’ 축으로 옮길 것을 충고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장마로 비가 내리는 압록강 단교 너머 신의주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북-미, ‘핵 범죄’ 서로 추동하는 적대적 공생관계
북, 미국에 매달려서는 공생보다 적대성 깊어져
햇볕정책 국제화 최선…한국 동아시아 중심될 것

개번 매코맥 저서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서 분석

복잡하게 꼬여가는 동북아 정세를 명쾌하게 분석한 저작이 번역됐다.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이카루스 미디어 펴냄)이다.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개번 매코맥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명예교수가 쓰고, 박성준이 옮겼다.

국내 학자들이 펴낸 이 분야의 저술이 복잡하고 현학적인 경향이 강한 편인데, 이 책은 대단히 명료하면서도 예리하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동북아 관계와 최근의 쟁점을 종횡으로 누비는데, 그 자체로 훌륭한 동북아 현대사의 개설서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매코맥의 탁월한 분석은 “미국과 북한 모두 불량국이거나 범죄국가”라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두 나라는 “법과 핵 개념에 대한 주의가 부족하거나 이를 경멸한다.” 이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지원하고 있다.”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이야기다. 맥코맥의 탁월함은 ‘양비론’에 그치지 않고, 북-미 관계를 더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데 있다.

우선 그는 두 불량국가의 ‘핵 범죄’의 경중을 따진다. 그가 보기에 미국은 지난 10년간 북한의 핵 위협에 골몰했지만, 북한은 지난 50년간 미국의 핵 위협에 둘러싸여 있었다. “미국의 지속적인 핵공격 위협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면서 북한은 핵에 대한 미국식 가치관과 행동코드를 흡수해버렸고, 이것이 북한의 군 중심 사고와 핵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민주주의도 공화주의도 아닌 절대 왕정일 뿐이다. 북한은 국가의 정통성을 기리는 사찰과 사당으로 가득 찬 기념비의 나라다.”

매코맥은 여기서 북한과 일본의 닮은 꼴도 추출해낸다. 만성적 식량부족, 조업을 중단한 공장, 혼란에 빠진 교통통신 체계, 그리고 최후의 재난이 올지 모른다는 극도의 피로와 긴장감 등 모든 면에서 “북한은 2차대전 말기의 일본과 다를 바 없다.” 특히 “북한과 일본은 겉으로는 양극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편적 시민권이 아닌 특별하고 독창적이며 우월한 존재로서의 신화적 정체성을 (국가 안에) 깊이 온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시의 미국과 고이즈미의 일본, 그리고 김정일의 북한 사이에 깊이 뿌리박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추출한 매코맥은 이제 ‘서울’에 주목한다. “현재의 워싱턴-평양 축을 서울-평양 축으로 대체”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특히 북한에 보내는 충고이기도 하다. 미국에 매달려서는 공생이 아닌 적대만 깊어질 뿐이라는 관측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평양과 세계를 이어줄 교류의 다리를 세우는 한편, (북한에 대해) 국제의무를 준수하도록 하면서, (세계가) 평양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햇볕정책’을 국제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해내는 한국은 “새롭게 떠오르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결정적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찌할 것인가? 매코맥은 미국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50년 전의 (한국) 전쟁”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미국은 (한반도) 전쟁을 단순히 북한 내 적대 세력을 제거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생각하겠지만, (전쟁 이후) 한반도 대부분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고, 이때문에 (한반도에서) 분노에 찬 더 큰 적대세력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매코맥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을 처리한 방식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태평양 전쟁 말기의 일본처럼 고립무원에 처한 북한은 필사적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으며, 중심가치만 유지할 수 있다면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1945년 당시 일본의 중심가치는 천황제였고, 현재 북한의 그것은 수령체제다.”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대신 민주주의 개혁을 도왔다.

그는 북한 내부에서 진행될 ‘남한식 민주화’의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북한 문제’는 서울이 그 중심일 때에만 비로소 풀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그는, “한국이 군사독재에서 시민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듯이 북한도 오직 자국민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서만, 한국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만 유사한 체제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매코맥은 한국의 민주화가 미국·일본 등의 외부 간섭이 아니라 그 내부의 시민혁명에 의해 진전됐음을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언어를 통해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하나의 해법을 전하는 매코맥의 내공에 감탄을 아낄 수가 없다. 전쟁을 통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협력을 통한 ‘한국식 민주주의’의 미래가 이 책에 녹아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남북한의 비교연구’ 공저…서방과 동아시아 균형시각 갖춰

개번 매코맥은 〈남북한의 비교연구〉(일월서각·1988)의 공동저자다. 마크 셀든 미국 코넬대 교수(〈한겨레〉 7월29일치 13면)와 함께 책을 엮었다. 멜버른대와 런던대 등에서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동북아 정치·역사·민족주의 문제를 공부했다. 동북아 정세에 해박한 여러 ‘국외’ 학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특히 미국·일본·중국 등 이른바 지역내 강대국 출신이 아니면서도 서방의 시각과 동아시아의 시각을 두루 섭렵한 독특한 학문적 방향성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을 찾아 각종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졌는데,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을 읽어보면 한국의 역할과 미래에 대한 매코맥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을 거쳐 중국을 연구했던 그는 이제 한국에서 동아시아의 미래를 관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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