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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0 17:18 수정 : 2006.08.11 14:16

정은영/ 이화여대 인문과학부

나는 이렇게 읽었다/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고 있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꼈던 건 바로 ‘포기’ 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였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하기 싫었던 숙제가 있으면 안 해가는 대신 손바닥을 한 대 맞으면 되었다. 중학교 때는 작은 숙제 하나라도 안 해가면 안 되었다.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수행평가 점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무조건 달려들어 숙제건 과제건 금방 해치웠다. 피곤해도, 하기 싫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잘 깨닫게 되었다. 잡지 못하는 공이라도 안간힘을 써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 공을 놓쳤을 때 뒤쳐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하며, 그 공을 한 번에 잡아내는 사람들을 보며 동경하고 칭송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당연한 삶의 이치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내가 받아들여야 하고 느껴야 되는 숙명임을.

잡지 못하는 공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써야만 할 때, 또는 내가 뻔히 치지 못할 공을 쳐야만 되는 때가 오고는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치러내야 하는 경기이며, 그 경기에서 승리하면 사람들은 ‘프로’라는 말을 붙인다. 그저 잡는 사람에겐 동경을, 못 잡은 사람은 무시하면 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출판 펴냄)을 읽고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위해 이리도 열심히 살고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했다. 좌절하면서 패배하면서, 아니면 꽃을 꺾어가면서도 영웅을 만드는 이 사회에서 그 볼을 잡기 위해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안간힘을 써야 되는 상황이 올 때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가.

분명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은 ‘소외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짜 야구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것’이라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우리에게 던져 준 공은 얼마나 큰 것인가. 삼미의 선수들은 훈련캠프로 떠나는 버스에 오를 때도 양복 정장을 입었으며 올해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이라고 대답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모두가 프로의 시대로 나아갈 때, 야구가 어느새 그냥 야구가 아니라 ‘프로야구’ 라고 불릴 때도 유유히 자신들만의 야구를 보여준 유일한 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질 수밖에 없으며, 소외당할 수밖에 없고, 사회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도조직의 가치관에서 이탈한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을 소외인이라 칭한 사람들 역시 잡지 못하는 공을 보고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더 이중적인 사람들이다. 어쩌면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은 그들에게 그러한 가치관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비극을 대신하고, 타인을 위해 그 상처를 감싸안는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삶은 요지경이자 고해다. 그러나 그들은 혼돈 속에서도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찾는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은 내게 말해주었다. 좀 지면 어떠냐고. 늘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단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나를 보며 더 이상 나 자신을 소외시키지 말라고 말이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똑바른 자세로 바라보라고 말이다. 나의 인생은 있는대로 속력을 내어 달리는 아우토반 위의 스포츠카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인생이라는 큰 판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그 판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은영/ 이화여대 인문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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