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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목민심서>에 실린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 중 ‘취중송사’. 술에 취한 수령이 송사를 처리하는 모습을 그렸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타락한 지방 수령들의 수탈상을 백성의 눈높이로 바라본 ‘분노의 서’이다.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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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중풍이 들어 온몸이 마비된 위급환자 기혈을 뚫을 자 수령이니, 위와 아래를 소통시키라
정약용이 낮은 자리에서 본 백성의 울음과 처방전 200년뒤 독자조차 주먹 불끈 쥐게 해
고전 다시읽기/정약용 <목민심서>
몸이 마비되어 불구가 된 것을 한의학에선 불인(不仁)이라 이르니, 인(仁)이란 곧 혈기가 잘 순환되는 건강상태를 뜻한다. 역시 유교의 키워드 ‘인’도 국가의 기운이 막히지 않고 원활하게 소통되는 상태라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유교정치의 성패는 곧 ‘소통’에 사활이 걸린다. 퇴계 이황이 지방수령의 역할을 “임금의 뜻을 아래에 베풀고, 백성의 원망을 위로 전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불능을 자책하며 물러나기를 청한 것도 이런 맥락 위에 있다.
사악한 아전을 잘 단속하라
다산 정약용은 당시 나라를 중풍이 들어 온몸이 마비된 위급환자로 진단하였다. 이에 그 긴급처방으로 내놓은 것이 48권 16책으로 이뤄진 <목민심서>다. 총 12부로 구성된 이 책은 곧 국가건강 진단서요 또 각 분야 질환에 대한 구급방이라 할 것이다. 한데 그 밑바탕에는 본질적인 혁신이 없고는 나라의 생존이 어려우리라는 비관이 깔려있다. (‘기술적 차원의 구급방’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나라의 비전을 저술한 것이 <경세유표>다.)
하면 국가적 마비상태의 기혈을 뚫을 자는 누구인가. 지방수령이야말로 그 침(鍼)이요, 뜸(灸)이다. 그는 “수령이란 곧 고대국가의 제후에 해당한다”라고 그 자율적 권능을 치켜세우면서 위와 아래를 소통시키는 본래 기능을 회복하길 촉구한다. 실제로야 지방수령 스스로가 소통을 가로막는 ‘벽’으로 굳어있었지만, 그럼에도 <목민심서>의 주인공은 수령들이다. 이 책의 대체적 스토리는 ‘선량한’ 수령과 ‘사악한’ 아전들의 쟁투라는 설화적 구도로 짜여져 있다. 그리고 감사(관찰사)와 중앙의 권문세가는 아전들과 결탁하여 수령을 굴복시키는 운명적 배경으로 개입한다.
이 대결구도에서 수령들이 패하는 첫째 이유는 아전들은 토착세력으로 그 지방 실정에 ‘빠삭한’ 반면, 수령은 기껏 3년 정도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수령으로 임관되는 자들이 실무에 어두운 서생이라는 점이다. <목민심서>는 곧 실무에 어두운 서생들을 위한 지방행정 가이드북이요 실무처리 매뉴얼이다. 그 필요성을 두고 그는 “수령이라는 직분은 관장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여러 조목들에 대한 가이드가 있어도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수령들 스스로가 생각해서 잘 행할 수 있다고 방기해서야 되겠는가”(서문)라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 속에는 또 행정이 전문영역이라는 가치판단도 들어있다. 말하자면 ‘덕성을 쌓으면’(수기) 곧 ‘정치는 자연스레 이뤄진다’(치인)라는 전래의 도덕주의를 넘어 수령의 직무가 ‘고유한 특수영역’이라는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학문이 깊고 넓다 하더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는 자는 백성의 수령이 될 수 없다”(‘이전吏典’ 조)라고 못 박는다. 그런데 왜 ‘목민심서’인가. 우선 목(牧)은 목축이라는 말에서 보듯 ‘짐승을 기른다’는 말인데, 목민은 ‘백성을 기르는 자’, 즉 수령과 관리를 뜻한다. 목동이 가축을 맹수로부터 막고, 풀밭을 찾아 옮겨가면서 기르듯 목민관도 백성을 외부의 침탈로부터 막고 농사를 잘 지어 편하게 살도록 돕는 공인이다. 아! 참 아름답고 가상한 직업이다. 그야말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편)라던 그 ‘목자’가 이 목민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목민관도 ‘사랑을 자발적으로 자아낼 수는 없다’고 그는 본다. 현실주의적 인간관이라고 할까? 백성을 길러야할 목민관이 막상 백성을 수탈하는 맹수로 표변할 수 있음에 그는 주의한다. 그러니 수령의 실적에 대한 상부의 엄정하고 조밀한 감찰(고과제도)은 꼭 필요하다. ‘감시하지 않으면 부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비관적 인간관이 그의 특점이다. 특히 공인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방대한 <목민심서> 가운데 특별히 눈여겨 볼 대목은 “이전(吏典)”편의 ‘고과제도(考功)’조가 그 첫 번째다. 하면, 목민의 민(民)이란 무엇인가. 수령이 아끼고 길러야 할 대상이요, 나라의 재화를 생산하는 기층이다. 수령이 봉록을 먹는 까닭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한데 당시의 문제는 백성들이 수탈대상으로 전락하였다는 점이다. <목민심서>의 저술 목적이 바로 ‘백성의 보호와 육성’에 있다면, 이 책의 사활은 백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눈길에 달려있다. 지방행정 가이드북이자 매뉴얼 어디서 들으니 ‘이해한다’는 말의 영어식 표현인 언더스탠드(under-stand)가 글자 그대로 ‘낮은 자리에 서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작 이것은 다산의 저술자세를 잘 드러낸 말이다. 서문에서부터 “내 처지가 (귀양을 가있어) 낮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실정을 듣는 것이 매우 상세하여 이것들을 종류별로 기록하였다”고 천명했던 것도 바로 ‘이해=낮은 자리에 서보는 것’이라는 항등식에 꼭 들어맞는다. 백성들의 실정을 몸소 겪었다는 점, 이것이야말로 다른 목민서(지방행정 매뉴얼)와 다산의 것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특별히 곤궁한 노인들과 재난의 첫 희생자들인 아이들, 그리고 핍박받는 여성들에 대한 안타까운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이에 <목민심서> 가운데 눈여겨 볼 두 번째 대목은 사회복지 대책을 서술한 “진황(賑荒)”편이다. 특별히 백성의 눈높이로 묘사한 당시 조세제도의 문란과 관리들의 가열한 수탈양상, 그리고 빈민들의 삶에 대한 절절하고 사무치는 서술은 2백년 후 독자의 주먹조차 불끈 움켜쥐게 한다. 특별히 ‘애절양(哀絶陽)’이라,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군적에 올려 세금을 추달하는 데 대한 저항으로 제 성기를 잘라버린 젊은 사내의 절망과 그것을 들고 관청으로 항의에 나선 아내의 분노, 그러나 열리지 않고 꽉 닫힌 관아의 대문을 그린 시는 읽을 적마다 분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작가 이병주가 <목민심서>를 두고 ‘분노의 서’라고 짚었던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하여, <목민심서> 가운데 눈여겨 볼 세 번째 대목은 “호전(戶典)”의 ‘환곡 장부’(穀簿) 조목과 “병전(兵典)”의 ‘병역의무자 선정’(簽丁) 부분이다. 그러면 또 왜 심서(心書)인가. 지방관들이 ‘명심해야 할 책’이어서 심서인가? 다산은 서문의 끝자락에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이 말 속에는 그의 목울음이 가득 들어있다. 한 국가를 경륜할 뜻과 넉넉한 방략이 가슴에 가득 차 있으나 수족이 묶여 뜻을 실천할 수 없는 선비의 ‘목민서’란, 마치 궁형을 당하여 불구가 된 몸으로 불후의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의 그 비감과 절통에 직통하는 것이리라. 단체장들이여 새벽마다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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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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