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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0 18:37 수정 : 2006.08.11 14:19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엮음, 안인희 옮김. 도서출판 소소 펴냄. 2만원

인문학·과학 소통하며 ‘제3의 문화’ 만드는
과학이 철학과 종교로 나아가도록 야심찬 질문을 던지는
과학자·사상가·웹사이트포럼 ‘에지’
운영자 브록만이 ‘새로운 인문주의자들’과 나눈 대담 에세이로

세계인들의 주기억장치에 스커드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대결로 기록돼 있는 미국-이라크 제1차 전쟁(걸프전)의 기억이 희미해져 갈 무렵인 1990년대 중반 인류는 포연 없는 또다른 전쟁을 목도했다. 인문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의 이른바 ‘과학전쟁’이다. 인문학자들은 과학지식이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며 사회문화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자연과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과학을 신화 또는 사회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반박했다.

전쟁은 1994년 미국 생물학자 폴 그로스와 수학자 노먼 레빗이 <고등미신―학문적 좌익과 그들의 과학과의 싸움>이라는 책을 함께 펴내면서 터졌다. 공격을 받은 이들은 1996년 반격에 나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학술지인 <소셜 텍스트>에 ‘과학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반론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 끄트머리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사회구성주의를 지지하는 이론으로 가득 채워진 미국 물리학자 앤런 소칼 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그러나 소칼 교수는 자신의 논문이 구성주의 인문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몰이해를 폭로하기 위해 가짜로 만든 ‘엉터리 논문’임을 스스로 폭로했다. 그는 다음해 <지적 사기>라는 책을 내어 프랑스 인문과학계의 유력인사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이들이 과학에 무지몽매함에도 과학용어를 사용해 학문을 하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공격해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지성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모든 전쟁에 전조와 자명고같은 경고가 따르듯, 과학전쟁을 예견한 ‘현자’가 있었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문학작가인 찰스 P. 스노는 1959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는 현대 서구사회에서 과학적 문화와 전통적·인문적 문화 사이의 단절 내지 대립을 지적하며 ‘두 문화’의 단절과 분극화 현상의 심화가 사회발전에 치명적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과학자도 ‘의문과 사유’에서 출발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원제:The New Humanists-Science at the Edge)는 ‘두 문화’의 소통을 시도하면서 인문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는 ‘새로운 인문주의자들’의 통찰들을 담고 있다. 편집자인 존 브록만은 과학자와 사상가들의 모임인 엣지재단 회장이자, 웹사이트 포럼 ‘엣지’(www.edge.org)의 발행인이다. <뉴사이언티스트>는 엣지에 대해 ‘놀랄 만한 영역’을 탐구하는 곳, ‘마침내 과학이 철학과 종교의 땅으로 나아가는 크고 깊고 야심찬 질문들’을 던지는 곳이라 평했다. 책은 브록만이 엣지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인터뷰와 대담을 에세이로 재구성해 엮었다.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며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는 웹사이트포럼 ‘에지’는 ‘제3문화’를 가꾸며 우리 시대에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사진은 ‘에지’ 운영자 존 브록만이 2006년 새해 이벤트로 던진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이라는 물음에 도킨스·다이아몬드 등 유명한 과학자들의 답한 기상천외한 답변과 에지재단의 활약상을 소개한 한겨레 지성섹션 <18.0˚>의 1월6일치 지면.
브록만은 경험세계에 토대를 둔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스노가 지적한 두 문화와는 다른 ‘제3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전통적인 지식인들과 달리 자신들의 작업과 저술을 통해 우리 삶의 깊은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인지를 새로이 정의하는 것이다.


15세기 인문주의(휴머니즘)는 지식 전체를 의미했지만, 20세기 공식적인 문화는 통합된 지식 세계의 중심에 과학과 기술을 위치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과학과 기술을 냅다 걷어차서 내쫓아버렸다. 브록만은 새로운 인문주의자들이 예술과 과학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시작했음을 선언하고 있다.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자들도 ‘시스템’이나 ‘학파’에 입각해 작업하기보다 다양한 원천들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가치가 입증된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과학자들과의 차이는 저술의 주제일 뿐 지적 작업의 방식은 다르지 않다.

이들의 작업은 15세기 인문주의자들처럼 의문과 사유에서부터 시작한다. “어째서 역사는 대륙별로 그토록 다른 진화의 노선을 밟아왔을까?” “왜 호모 사피엔스는 울 때 눈물을 흘리는 유일한 종인가?” “사람들은 ‘독일산 셰퍼드의 귀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어떻게 기억을 더듬어 답변하는가?” “21세기 중반쯤이면 진짜 부자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같은 종족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최후의 컴퓨터는 얼마나 빠르고, 작고, 강력한가?”….

이런 새로운 지적 풍경의 답사기는 <제3의 침팬지> <총, 균, 쇠>의 저자인 생물지리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글로 첫장을 연다. 그는 “왜 지난 1만3천년 동안 인류의 발전은 각 대륙에 따라 그렇게 다른 속도로 진행됐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놓고 출발한다. 다이아몬드는 ‘인종주의’ 망령 때문에 사람들은 질문 자체에 지레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다른 설명을 찾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대륙별 다른 발전속도는 환경 탓

그는 독자들을 먼 과거의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유럽, 아시아로 이끌고 다니며, 유라시아인들이 세계를 지배해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들을 확인해간다. 우선 일차적 요인은 총·균·항해술에서 찾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원주민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전염병이다. 이것은, 분자생물학자들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축 밀집 지역에서 발생했다.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축 사육이 상대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땅덩어리에 동서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양식을 폐기한 데서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많은 수의 개인들로 이뤄지고 다른 사회들과 접촉이 잦은 많은 수의 경쟁사회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에서 발명의 속도는 빨라지고 문화 상실의 속도는 느려진다”는 해석을 가져온다. 그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역사의 가장 큰 패턴, 곧 각 대륙의 인간 사회들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내가 보기엔 각 대륙의 환경 차이 탓이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물학적 차이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진화생물학자 헬레나 크로닌, 철학자 대니얼 C. 데닛, 생물인류학자 리처드 랭검, 컴퓨터과학자 로드니 브룩스, 인지과학자 앤디 클라크, 물리학자 앨런 구스 등 나머지 20여명의 새로운 인문주의자들과의 진지하고 흥미로운 대화는 독자 몫으로 남겨둔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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