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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0 19:07 수정 : 2006.08.11 14:19

시크릿 하우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1만4000원

하루 24시간 움직이는 동선 따라 집안의 사물·현상·물질의 비밀
질리도록 후벼 파 지은이 머릿속도 궁금해진다

‘♬둥근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랫니 닦자, 세수할 때는 깨끗이 이쪽 저쪽 목 닦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거울을 봅니다, 꼭꼭 씹어 밥을 먹고~~~♬’

책 제목에서는 얼핏 납량특집 추리소설이 떠오르더니 정작 책장을 넘기다보니 유치원생들의 애창곡이 절로 흘러나온다. ‘아침, 자명종 시계에서 나온 파동이 마하 1의 속도로 뻗어나가 침대 위 부부의 잠을 깨운다’로 시작하더니, 그들이 일어나서 창을 열고, 마루를 걸어 욕실에 가서, 치약으로 이를 닦고…움직이고 생활하는 동선을 따라 24시간 동안 쓰거나 닿는 집안의 모든 사물 또는 현상, 심지어 공기까지를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세세하다 못해 집요하게 파헤친다. 물론 잡다한 수다와는 차원이 다르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서양에서 쌓아온 온갖 지식과 전문용어들을 동원한 까닭에 무척 솔깃하다.

우선 치약을 해부한다. 초크, 물, 페인트, 해초, 부동액, 파라핀유, 세제, 박하, 포름알데히드(해부용 소독제) 그리고 불소로 이뤄진 화학물질 덩어리를 입으로 가져감으로써 우리는 상쾌한 아침을 시작한다. 이어 식탁 위에는 세균인 슈도모나드균이 득실거리는데, 조간신문을 식탁에 던지는 순간 인쇄 잉크가 일부 흘러나와 세균들을 도망치게 한다. 그 세균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금자리, 행주를 애기할 때는 ‘끔찍한 비밀이니 심장이 약한 독자라면 더 읽지 않으시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친절한 협박까지 잊지 않는다.

가장 엽기적인 대목은 욕실 그 중에서도 변기다. 물이 내려갈 때 배설물이 하수구로 말끔히 휩쓸려 간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보일 뿐이다. 물이 뱅글뱅글 돌다가 내려가면서 윗부분에 거품과 포말이 얇은 막처럼 생겨나는데, 너무 가벼워 물 위의 공기 속으로 솟구쳐 오른다. 이 50억~100억 개의 미세한 물방울, 연무가 그리 위생적이지 않은 세균 바이러스를 품고 집안을 비행한다. 물을 한번 내릴 때마다 6만~50만개의 병원성 물방울이 피어나서는 마를 때까지 11일 정도 꿋꿋이 살아남는다. 그러니 어쩌라구? 물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뚜껑을 덮으시라!

이런 류의 잡학보고서들이 지니는 최대 장점은 뭐니뭐니에도 평소 궁금했거나 잘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것. 1차 대전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립스틱은 말려 빻은 곤충 시체로 색을 내고 밀랍을 넣어 단단하게 한 뒤 올리브유로 윤기를 낸 기름 덩어리여서, 심한 악취 때문에 뉴욕시 보건당국에서 판매금지를 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끈질긴 여성들의 욕망에 힘입어 제조업자들은 쇼트닝, 비누, 피마자유, 석유 왁스, 향수, 방부제 등등을 섞어 지금껏 성업중인데, 요즘은 생선 비늘을 넣어 하루 종일 입술을 반짝이게 하는 마술 수준까지 도달했다.

옷장 안에도 역사와 얘깃거리가 즐비하게 걸렸는데 청바지가 대표적이다. 왜 푸른 색이 되었나? 1960년대초 전통적인 푸른 염료인 인디고 공장들이 값싼 합성염료 개발에 밀려 몰락할 즈음 화학자들의 아이디어로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면바지를 염색하되, 날실과 씨실 중 하나만 물들여 덜 화려한 푸른색 원단이 탄생한 것이다. 그 회사가 바로 캘리포니아의 리바이-스트라우스사, 제품은 ‘리바이스 진’이다.

얘기는 다시 주인 부부가 저녁 초대를 한 식탁으로 돌아온다. 끝날 무렵 서양 디저트의 대명사 케이크가 등장한다. 그런데 역시나 말랑말랑 달콤한 맛에 대한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한 대접 가득한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돼지비계’라니... 돼지비계와 생선을 갈아 얻은 기름에 글리세롤 모노스테아레이트(GMS, 비누 성분), 다량의 물과 설탕, 밀가루 약간만, 콜타르 색소와 향료, 베이킹 소다가 어우러져 푹신하고 가볍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쾌감을 빚어낸다니. 케이크보다 더 유혹적인 아이스크림의 정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기를 주성분(50%)으로 하는 식품”이라할 만큼 지방 덩어리에 공기를 주입시킨 것에 불과한데 차갑게 얼려서 거품이 나는 싸구려 마가린 즉 아이스크림 매스에 결정적으로 접착제를 넣음으로써 끈적 매끈한 포장이 완성된다. 그 접착제란 소나 돼지의 몸통에서 먹지 않는 부위·젖통·코·꼬리·직장 등을 한 데 모아 끊인 것이다. 그보다 더 놀랍고 찝찝한 사실은,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이나 가장 질이 처지는 재료를 감추기 위해 초콜릿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식후 담배도 빠질 수 없다. 그 해독이야 새삼 나열할 필요도 없으니, 지은이는 표현은 그 못지 않게 독하게 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누군가 죽이고 싶다면, 그냥 담배를 권하란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브로우웨르의 부동점 정리 이론을 들먹이더니 커피를 휘저은 금속 스푼이 왜 덩달아 뜨거워지는지 따지다가 엔트로피 법칙까지 들이댄다. 하루를 마치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면 끝일 것 같은데, 또한번 허를 찔러, ‘또오똑 한밤중의 잔인한 고문’ 욕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이유와 왜 하필 그런 소리가 나는지를 후벼 판다. 졌다! 아니 질렸다!


과학 마니아라면 누가 이런 책을 썼는지 이미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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