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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0 19:56 수정 : 2006.08.11 14:20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테리 핀카드 지음. 전대호·태경섭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 4만8000원

18세기 몰락과 19세기 여명 동시에 목격하며
분열된 세계서 방향 제시한 헤겔의 생애와 사상 조망

겁나게 두툼한 책은 말 그대로 독자를 겁에 질리게 하거니와, 겁먹은 독자는 아예 책을 손에 집어 들지도 않거나 독한 마음을 먹고 첫 장부터 독파하기로 결심하거나 한다. 그런데 겁에 질린 이가 취할 방법에 이렇게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니, 양 극단 또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항목들 사이, 또는 달리 말하면 그것들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넘어서는 또다른 방법이 있기도 한데, 그것은 군데군데 발췌해서 읽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제3의 방식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목차를 살펴보기로 하자. 헤겔의 전기인 이 책의 제1부는 <정신현상학>을 저술하기 전 까지에 해당하는 생애를 다루고 있고, 제2부는 <정신현상학> 저술 이후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의 생활을, 제3부는 베를린 대학에서의 삶, 그리고 <법철학>을 둘러싼 여러가지를 조망하며, 제4부는 ‘마지막 나날들’, 그리고 제5부는 부록으로 되어 있다. 목차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근대성을 인류 자신의 역사의 필연적 산물로 설명’하려는 기획인 <정신현상학>과 ‘나폴레옹이 극적으로 몰락한 이후에 독일이 취할 모습에 관해 진행되고 있던 격렬한 논쟁과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쓴’ <법철학>이라는 책 제목들이다.

철학자에 대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궁금해하는 것들은 그의 사상과 이론이고, 그것들은 책으로 표명된다고 할 때, 우리가 <정신현상학>과 <법철학>을 다루고 있는 부분부터 읽어 나가는 것은 유익하기도, 유연하기도 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분명 헤겔의 전기로서 시도된 것인만큼 오로지 저작 해설서로 취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다. “삶 속에서 18세기의 몰락과 19세기의 여명을 목격한 동시대의 독일인과 유럽인이 몸소 체험한 거대한 변화를 이해”하려던 헤겔의 철학적 사색의 출발점을 염두에 두고 이것의 형성을 가능케 한 헤겔 당대의 시대적, 개인적 배경을 탐색해보는 것도 독서의 요점이어야 할 것이요, 그에 못지 않게 “지금도 여전히 자유의 찬미와 시장경제가 우리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대의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헤겔이 어떻게 “근대성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았는지를 짐작해 보는 것 역시 과거의 철학, 그것도 다른 나라 철학자의 철학을 읽는 까닭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에 덧붙여 철학자는 시대와의 교감뿐만 아니라 선행하는, 그리고 당대의 철학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전선에서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체계를 성립 -이 점은 자신의 철학 체계를 철학사 운동의 변증법적 전개의 정점이라 간주했던 헤겔에서 더욱 요긴한 것이다 -시켜 나가므로, 그러한 흔적을 추적해보는 것 또한 요구된다 하겠다.

이러한 점들에 눈길을 두고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혼란해진 두뇌를 잠시 식히려면 헤겔이 “모든 문장의 시작을 ‘따라서’로 시작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종래에 Aufhebung이라는 술어의 번역어로 널리 쓰이던 ‘지양’을 역자들이 ‘취소하다’와 ‘보존하다’의 뜻이 모두 들어 있는 ‘거둠’으로 바꾸어 본 시도들을 잠깐 보는 것도 좋겠다.

헤겔은 저자의 지적처럼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영원한 철학’을 추구한 거장으로 평가받건, 아니면 철학사의 영원한 거장으로 간주되건 간에 그가 “분열된 세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했고, “프랑스 혁명 이후 복잡한 삶을 헤쳐나갈 길”을 찾으려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시대의 이슈에 정면으로 대결했던 것이다. 그는 그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근대적인’ 철학자였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읽는 것은 우리에게 ‘철학’을 둘러싼 여러가지 주제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볼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부록에 붙어 있는, 헤겔 철학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는, 역자들이 번역한 <정신현상학> 서문은 재미삼아 읽어보면 되겠다.

강유원/서평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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