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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0 19:59 수정 : 2006.08.11 14:20

호미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禪)’

아깝다 이책

1999년에 나온 영화 ‘매트릭스’는 대단한 흥행 성공을 기록하면서 다양한 철학적, 종교적 해석과 더불어 21세기 벽두 몇 해 동안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다 2003년 12월 세계에서 동시 개봉한 완결편(3편)이 혹평 속에서 흥행에 참패하면서 ‘매트릭스’에 대한 관심은 거짓말처럼 곧 사그라졌다. 그 즈음에 낸 책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禪>은 그런 여파 속에서, 마치 유효 기간이 지난 식품처럼,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아까운 보물을 그만 깊은 우물 속으로 빠트린 듯한 심정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건만 꺼내어 다시 소개하는 까닭은,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문제가 ‘사이버스페이스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더없이 유효하고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짧고 경쾌한 글로 써나가 쾌속으로 읽히는 이 책은,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들과 불교 선사들의 선문답을 서로 대비시키면서 선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매트릭스’를 위시한 여러 에스에프영화와 소설, 장 보드리야르부터 티모시 리어리에 이르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선구자들, 그리고 히피이즘을 계승한 반문화 그룹까지 종횡무진으로 인용하면서, 옛 선사들이 나눈 선문답을 그 의미와 힘을 명쾌하게 펼쳐 보이는 이 책은, 시각은 새롭고 도발적이고, 어조는 발랄하다 못해 발칙하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천년 세월의 더께가 겹겹이 쌓인 선가의 권위를 한칼에 댕강 쳐낸다. (이야말로 선적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하지 않았던가.) 텍스트로 인용된 ‘매트릭스’의 장면들은 난해해 보이던 선어록을 쉽게 해독하는 기능을 하고, 거꾸로 선사들의 선문답은 영화를 깊이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 이중의 암호 해독 기능이 서로 부딪치면서 또다른 새로운 재미를 낳은 덕분에, 도대체 요령부득이던 선문답이 21세기의 보통 사람에게도 손에 잡힐 듯이 쉽게 이해된다. 그러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또는 선불교에 무지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나 지은이가 정작 중요시하는 것은, ‘매트릭스’처럼 선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영화를 가능하게 한, 오늘의 ‘네트워크 혁명’이다. 시공간을 허물고 세계 구석구석을 잇는 인터넷 네트워크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 선불교와 기막히게 닮았다는 것이다. 곧, 책의 초반부에서 ‘매트릭스 2’의 스크린 방,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TV 붓다‘, 중국의 현수 스님이 측천무후에게 연기법을 이해시키려고 설치한 거울방, 불경에 나오는 제석궁의 구슬그믈(인드라망)을 차례로 보여주고는, 서로 비추고 비취지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그들 이미지처럼, 네트워크가 구축한 사이버스페이스 자체가 훌륭한 연기법의 비유라고 지적하고는, 더 나아가서는 영화 ’매트릭스‘나 사이버스페이스 속의 반문화 운동이 선불교와 긴밀한 유사성을 가짐을 낱낱이 입증한다. 결국 오늘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네트워크로 모여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에 선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으니, 곧 “사이버스페이스야말로 21세기의 선방”이라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재 진행형의 혁명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혁명, 그 와중에 휩싸여 있다. 난세라고 한다면,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초고속의 난세이다. 초고속의 난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난세에 몸을 싣는 것이다. ‘반역’을 도모하는 길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결국 가상의 세계이다.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자 한 불교의 선사들은 이 세계도 모두 환상이요 허깨비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단단히 의심을 품고서, 모두 “버리고, 비우고, 뒤집어엎음”으로써 이 “밥 한 그릇의 마법”(환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반역’을, 곧, ‘유쾌한 반란’(지은이가 애초에 붙인 책 제목이 ‘매트릭스와 유쾌한 반란’이었다)을 꾀하자는 것이다. 보통의 군중이 다함께 닦고 깨닫는 길이 사이버스페이스에 이미 무르익어 있다. 춤을 추듯, 컴퓨터 게임을 하듯 쉽고 즐겁게 선의 깨달음에 이제 이를 수 있으니, “Shall we zance?”

홍현숙/도서출판 호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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