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0 20:04
수정 : 2006.08.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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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히로시마
데이비드 디오니시 지음. 정성훈 옮김. 산지니 펴냄.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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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가 핵폭탄이었다면?
미 공화당 출신의 ‘아메리칸 히로시마’ 시나리오
미국 파멸 겨냥한 약자들의 분노 거두려면 미국이 변해라
‘원자폭탄’은 등장 과정 드라마처럼 그린 논픽션
2001년 9월11일 뉴욕 맨해턴 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을 무너뜨린 것이 대형여객기의 충돌과 연료유 폭발이 아니라 핵폭탄이었다면?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하지만 그런 류의 대참사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리틀보이’의 위력은 TNT 1만3000t급이었다. 그때 35만 인구 가운데 최대 16만명이 죽었다. 뉴욕뿐만 아니라 거주인구 수백만에서 수천만을 헤아리는 현대의 주요국 대도시에서 그 정도 위력의 핵무기가 폭발한다면 희생자수는 당장 수백만명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디오니시의 <아메리칸 히로시마>(산지니 펴냄)는 바로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디오니시에 따르면 오늘날 TNT 1만t급 핵무기는 서류가방 크기 정도로 작게 만들 수 있고, 마약 밀수보다 훨씬 더 손쉽게 미국 안으로 반입할 수 있다. 만일 그런 핵폭탄을 뉴욕 등 대도시 도심에 하나도 아니고 여러개를 동시에 폭발시키거나, 교외의 핵발전소들을 표적으로 작동시킨다면? ‘아메리칸 히로시마’란 이런 식으로 미국 파멸을 겨냥해 미국 안에서 핵폭발을 일으키고자 하는 모든 계획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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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
다이애나 프레스턴 지음. 류운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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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뉴욕 무역센터를 공격한 알카에다 조직은 애초 인근 핵시설 공격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들이 러시아에서 도난당하거나 밀거래된 핵무기를 입수해 뉴욕에 반입했다는 첩보가 미 중앙정보국(CIA)에 보고돼 초긴장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미국 등 핵대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들은 이미 비축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인류를 수십번 수백번 거듭 죽일 수 있다. 냉전체제 붕괴와 함께 미국-소련 군비경쟁이 한풀 꺾이면서 사람들은 핵전쟁, 핵겨울로 인한 인류절멸 위기에서 벗어나기라도 한듯 안도하고 있지만, 착각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해체 약속을 얼버무리며 오히려 새로운 핵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그리고 정체모를 조직이나 단체들의 핵무기 보유를 향한 절박한 노력들이 지금 어느 지경에 도달했는지 우리는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마약 반입보다 쉬워진 핵무기
오로지 상대방의 존재 말살을 겨냥해 미친듯이 달려가는 그런 광기는 증오에서 출발한다. 증오는 도덕과 정의가 곤두박질하고 자신이 무참하게 유린당했다는 과도한 피해의식에서 출발한다. <아메리칸 히로시마>는 미국을 겨냥한 상대적 약자들의 증오와 광기에 대해 미국의 무엇이 사태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인 제공자는 미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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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핵무기 테러? ‘히로시마 비극’이 미국땅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아메리칸 히로시마’ 악몽에서 미국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 대원들이 납치한 대형 여객기들의 충돌로 화염에 휩싸인 채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뉴욕 맨해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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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이슬람지역의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은 1979년부터 시작됐다. 79년이면 바로 이란에서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나 미국이 지원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미국대사관 직원 50여명이 인질로 붙잡힌 해다. 저자는 미국을 궁지로 몰아간 반미적 호메이니 혁명의 원인을, 이란 석유산업 국유화를 선언한 모하메드 모사데그 이란 민선정부를 미국과 영국이 53년에 쿠데타 공작으로 무너뜨린 데서 찾는다. 어디 이란뿐인가. 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자신의 국익을 앞세운 채 그 비슷한 이유로 65개국에 군사개입해 증오의 씨를 도처에 뿌렸다. “미국이 세계 무기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고, 국제형사재판소와 같은 국제사법체계를 무시하며,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130개가 넘는 국가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으며, 특별인도프로그램과 같은 고문행위를 자행하고, 열화우라늄 무기를 사용하며, 선제적 전쟁정책 등을 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잇속을 차리는데 혈안이 된 군산복합체는 사실을 은폐하고 언론은 권력자편에 서서 현실을 오도한다. 칼라일 그룹과 그룹 큰손 조지 부시 집안, 그리고 사우디 빈 라덴가의 공생관계를 보라! 미국 대중은 무지하며 조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
군 정보장교 출신에 보수적 공화당원이었던 저자가 오늘날 비영리단체 ‘전쟁없는 세상’을 이끌면서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며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헌신하게 된 출발점은 한국 근무(85~86년)였다. 그가 한국으로 배속되자 교관이 한 말은 “미국 병사들을 좋아해 주는 곳은 이제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을 걸세.”였다. 그러나 실제로 겪은 한국마저 교관 얘기와는 달랐다. 인생을 바꾸는 사고전환은 그때 시작됐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군사력 증강과 단속 강화, 선제공격 등은 증오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며, 그래서는 결코 ‘아메리칸 히로시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유일한 해결책은 미국인이 생각을 바꾸고 국가진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악몽은 미국이 자초한 것
<원자폭탄>(뿌리와이파리 펴냄)은 끝내 ‘아메리칸 히로시마’의 공포까지 낳기에 이른 핵폭탄이 인류역사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등장했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한다. 2005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과학기술상을 받고 올해
논픽션상 후보에도 올랐다. 부제처럼 마리 퀴리의 라듐 발견에서부터 히로시마 원폭투하까지의 과정을 유려한 문장으로 능숙하게 그리고 있다. 만인공유가 당연한듯 여겨졌던 원자세계 지식은 히틀러 등장과 함께 서로가 앞서려 다투는 처절한 경쟁대상으로 돌변했다. 방대한 자료를 동원하면서도 인간드라마처럼 개성있는 숱한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이고 정제된 움직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젊은 엄마 기타야마 후타바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은장신구처럼 예쁜 비행기 한 대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곁에 서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낙하산 하나가 떨어지고 있네.’ 그 다음, 낙하산은 ‘형언하기 힘든 빛’을 내며 폭발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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