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7 19:55
수정 : 2006.08.18 14:25
한국인 첫 여성 ‘터키문학’ 박사 베일 화두로 이슬람 문화 해부
“억압 실체는 종교 아닌 가부장제” 서구시각 추종 반성·소통 촉구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 쓴 오은경 교수
‘천일야화로도 불리는 <아라비안나이트>가 한 여인이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왕에게 들려준 천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왕비의 배신에 대한 복수로 전국의 처녀들을 데려와 매일 하룻밤씩 보낸 뒤 죽여버리던 잔혹한 왕은 천하루동안 샤흐르자드란 여인이 지어낸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3년간의 잔혹행위를 중단했다.’
이슬람, 하렘, 히잡은 잘 모르지만 누구나 한번쯤 읽었거나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 지은이가 첫머리에 이를 언급한 의도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자못 비장하게 다가온다.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프로네시스 펴냄)을 쓴 오은경 교수(동덕여대)는 “이처럼 우리가 이슬람문화, 특히 여성의 삶에 대해 얼마나 피상적이거나 잘못 알고 있는지,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것인지를 ‘베일’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슬람 급진세력의 9·11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래, 중동과 이슬람문화는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세계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베일 논란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의 하나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이 여성들에게 베일를 강제로 씌우고, 이를 어긴 채 방송을 진행한 여성 디제이가 ‘명예살인’을 당했다는 등의 뉴스는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을 일으키곤 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아랍어로 우스리야)는 20세기들어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한 자기 성찰과 자기 구제에서 출발했지만 여성에게는 가부장제적 억압의 사슬로 돌변했어요. 탈레반의 베일 착용 의무화는 역사와 문화의 시계를 1400년 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 폭력이라 할 수 있죠.”
애초 베일은 이슬람교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풍습의 하나에 불과했다. 여성만 쓴 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7세기 첫 고대 도시국가를 세운 수메르인들이 자치권의 상징으로 활용하면서 널리 퍼져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문화권, 비잔틴시대에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명칭도 형태도 다양하다. 아랍국가에서는 두건형의 ‘히잡(아랍어로 가리다 혹은 격리하다)’,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와 시리아·터키에서는 ‘바쉬 외르튀쉬’란 스카프 형태다. 아프가니스탄의 ‘부르카(차드리)’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쓰는 형태로 가장 보수적이다. ‘차도르’는 이란에서 쓰는 망토형, ‘니캅’은 히잡에 얼굴 가리개를 덧붙인 것으로 파키스탄과 모로코 등에서 쓴다.
“특히 수메르족들이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 가족구조를 형성하며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법제화했는데, 남성에게 속한 여성과 속하지 않은 여성을 구별하기 위해 베일을 활용했어요. 이후 앗시리아 때 ‘군주의 아내와 딸, 첩, 신전에 바쳐진 성창으로서 현재 결혼한 여성은 베일을 써야 한다. 그러나 매춘부와 노예는 쓸 수 없다. 쓰면 처벌한다’고 아예 법을 만들었죠.”
“결국 베일은 가부장제가 씌운 것”이라는 오 교수의 결론은 그의 연구 이력을 보면 좀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1991년 터키 정부 초청으로 국립하제테페대학에 유학해 터키문학과 비교문학 전공으로 7년만에 박사학위를 딴 첫 한국인 여성인 그는 특히 20세기 두 나라의 소설을 텍스트 삼아 여성주의 비평 연구를 해왔다.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일찌기 무스타파 케말(케말 파샤)의 근대화정책에 따라 베일 착용이 금지된 터키에서 오히려 일부 여성들이 반발하고 있는 현상 역시 “베일 벗기 정책이 여성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서구식 근대화의 도구로 공권력에 의해 강제됐기 때문”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따라서 “탈레반이나 미국이나 여성에겐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그는 문화 차이로 용납하거나 인권 침해로 비난하거나 모두 외부의 시각일 뿐, 정작 이슬람 여성들의 욕망을 읽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우리, 특히 지식인과 언론은 서구적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문명간 소통과 연대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그는 천일동안 죽음에 맞서 이야기를 지어낸 샤흐르자드의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답했다.
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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