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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7 20:05 수정 : 2006.08.18 14:25

X염색체의 비밀
데이비드 베인브리지 지음. 이석인 옮김. 고즈윈 펴냄. 1만1500원

혈우병·색맹·근이영양증이 남성에게만 나타나고
관절염·다발성 경화증이 여성에게 빈발하는 건
모두 X염색체 수 차이 때문

흡연석-비흡연석을 운용하는 식당이 있다. 한 쌍의 손님이 들 때 둘 다 흡연자면 당연히 흡연석에 앉히지만 둘 중 하나가 흡연자면 흡연석에 앉힌다. 성염색체의 조합이 남녀를 결정하는 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남성(흡연석)은 Y(흡연자)의 유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여자아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생겼다고 말할 수 있고, 남자아이는 Y염색체가 몸싸움을 벌여야 생긴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른 동물들을 보면 성별이 주변환경, 부화온도, 또는 성염색체의 갯수에 의해 결정되는 예가 많다. Y염색체에 의해 남녀가 결정되는 인간은 어쩌면 별스런 존재에 속한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의 공통조상은 X, Y염색체를 가지지 않았다. 포유류는 3억년 동안 X, Y 염색체를 진화시켜왔을 것이다. ‘Y염색체의 성별 결정 부위(Sex-determining Region on the Y chromosome)’ 즉 Sry 유전자는 X, Y염색체의 조상이 되는 상염색체(autosome) 위에 있다가 두 염색체의 소통이 중단되면서 한 쪽에 남아 성별을 결정하는 것으로 변모해 생긴 결과다. 즉 X염색체와 헤어진 Y염색체는 고립되어 손상된 유전자를 수리할 수 없었을 것이며 대다수의 유전자는 떠나거나 퇴화했다고 믿어진다. Y염색체는 Sry유전자를 옮기는 운송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X염색체는 남-녀 모두에게 유전되므로 필요한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다. 다시 말해 X염색체는 Y와의 이혼에도 상처받지 않고 돌아온 화려한 싱글이다.

그런데 남성은 어떻게 한 개의 X염색체로 버티는가, 여성은 어떻게 두 개의 X염색체를 견디는가. 이제는 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쯤에서 (고즈윈)의 본론이 시작된다.

남자만 공격하는 혈우병. X염색체는 ‘응고인자 8번’과 ‘응고인자 9번’이란 두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갖고 있다. 남성은 X를 한 벌만 가지므로 손상된 유전자를 가졌으면 혈우병이 발병한다. 반면 여성은 두 벌의 X를 갖고 있으므로 하나의 정상 X염색체만 있어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색맹이나 근이영양증(몸이 점점 굳어져 죽음에 이르는 병) 등 성염색체성 질병은 상황이 모두 비슷하다. 남성들이 단벌 X염색체를 가짐으로써 고통을 받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어떨까.

여분의 21번 염색체를 물려받은 아이들이 다운증후군이 걸리고, 대다수의 다른 염색체가 여분으로 유전되면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는 것처럼 대다수 유전병은 여분의 염색체를 물려받은데서 온다. 이와 똑같이 여성의 두 X염색체도 모순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여성이 멀쩡한 것은 X염색체 비활성화론으로 설명한다. Xist(inactivated X chromosome-specific transcript) 유전자의 역할에 따라 두 개의 염색체 가운데 한 개만 기능하게 하여 염색체의 독성에서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복잡성은 활성 X염색체의 선택이 임의적이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여성은 유전적으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함께 섞인 것처럼 다른 X염색체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세포들의 혼합체, 즉 모자이크 효과가 있다.)

여성들이 잘 걸리는 자가면역성 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낭창, 만성 갑상샘염 등의 배후에는 X염색체 비활성화 과정의 부작용이 어른거린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다발성 경화증은 2배, 낭창은 10배, 하시모토 갑상샘염은 50배나 흔하다. 전체적으로 자가면역성 질환은 80%가 여자다.

‘괴로운 바다’, 그 밑바닥에는 X, Y염색체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들 하나하나의 성별은 미래로 도도히 흐르는 유전자와 비교할 때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다. 단지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를 뿐이다. 인류의 본질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두 형태, 즉 서로의 낯선 측면을 나타내는 두 성별로 존재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 삶을 형편없이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249쪽)”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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