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8 19:46
수정 : 2006.08.18 19:46
대표저술 국내 오독 짚으며
‘국면 개념’ 비판적 이해
아날학파 함께 다뤄
김응종 교수, 프랑스 대표 역사학자 입문서 펴내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사진)을 안내하는 의미심장한 책이 나왔다. 〈페르낭 브로델〉(살림 펴냄)이다. 브로델을 포함하는 아날학파의 2세대와 3세대를 연구해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은 김응종 충남대 교수가 썼다.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에게 브로델은 낯설지 않다. 일정한 주기와 순환성을 가지는 ‘콩종크튀르’(국면)라는 개념을 통해 역사학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놓은 브로델은 마르크스에 뒤이어 국내 학자들이 가장 즐겨 인용하는 서양 역사학자다. 그러나 김응종 교수는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 브로델에 ‘거품’이 많다고 지적한다. “브로델의 ‘역사’는 그의 ‘신화’에 미치지 못한다”고 썼다. 나아가 “그의 역사학은 웅장하지만 짜임새가 없고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수사학적 비유가 과다하며 전체적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토대 삼은 김 교수는 “신화적 인물이 되고 있는 브로델을 역사의 무대로 끌어내려 제대로 평가”해 낸다. 200여쪽의 많지 않은 분량에 요령있게 담은 브로델의 세계와 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김 교수의 세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브로델에 대한 오독 또는 오해의 상당 부분은 그의 원전이 제대로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대표저술인 〈지중해〉는 아직 번역판이 나오지 않았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번역판은 무려 6권으로 이뤄져 있어 정복하기 쉽지 않다. 김 교수가 이번에 쓴 〈페르낭 브로델〉은 이 두 권의 대표 저술을 ‘해제’하면서 브로델 역사학의 탄생과 이후 과정을 고르게 짚고 있다. 브로델 입문서가 갖춰야 할 거의 모든 요소를 품어 안은 셈이다.
김 교수는 브로델 역사학에 등장하는 지리적 환경,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구조와 인간 등의 문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때로 브로델을 옹호하고 때로 브로델을 비판했다. 예컨대 브로델이 ‘유럽 중심주의’에 기울어 있다는 국내 학자들의 비판에 대해선 브로델을 오독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라고 다시 비판했다. 대신 브로델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서술이나 ‘구조’를 절대화시키려는 경향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뤼시앵 페브르, 이매뉴얼 월러스틴, 에르네스트 라부르스, 조르주 뒤비 등 아날학파를 중심으로 한 현대 역사학 및 사회과학의 주요 인물들이 동시에 등장해 브로델과 어깨를 걸거나 맞서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브로델을 중심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 역사학’의 입문서이기도 하다.
브로델의 세계를 빌려 등장하는 김 교수의 학문적 풍모를 접하는 것은 이 책의 또다른 묘미다. 그는 “영원히 읽히는 책은 훌륭한 책이 아니다. 특정 시대에 읽히고 더이상 읽히지 않는 책이 훌륭한 책이다. 브로델의 책이 그렇다”고 말한다. 브로델에게 보내는 ‘김응종식’ 극찬인 셈이다. 브로델을 냉동보존하지 않고 퇴비로 삼아 새싹을 틔우려는 이 역사학자는 “옳고 그름의 차이가 없어지고 사실과 허구가 뒤범벅이 된 시대에 역사가는 흔들림 없이 ‘사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지적 유행에 편승해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일에 앞장서지 말고 사실과 허구를 분명히 가르는 일을 해야 한다”고 썼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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