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24 18:47
수정 : 2006.08.25 14:48
추리소설 애호가에 인기높은 미야베의 <모방범><이유> 등
사회 병리현상을 속도감있게 한편의 범죄드라마로
일본 탐정 대명사인 ‘고스케 시리즈’는 추리소설의 고전
‘교수 탐정’ ‘수수께끼 책’ 등 최신 흐름 보여주는 소설들도
여름이 되면 이른바 ‘장르문학’ 책들이 몰려 나오는 것이 이제 자연스런 관습으로 굳어진 듯하다. 올해에는 특히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들이 예년보다 유독 많이 나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질적인 면에서도 묵직한 주요작들이 많아 열성독자들이라면 귀가 솔깃할만한 것들이 여럿이다. 일본 미스터리물들이 밀려오는 것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모호한 일본소설의 특성, 그리고 최근 출판계에서 일본 소설들이 그야말로 ‘쏟아지듯’ 소개되고 있는 흐름에 비춰볼 때 예상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 가장 관심을 모을 작품이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문학동네 펴냄·전3권)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높은 추리소설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바로 <모방범>이다. 2001년 일본에서 출간돼 모두 280만부가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모방범>은 등장인물들이 종횡으로 이어지면서 바톤을 넘겨받듯 차례대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공원 쓰레기통에서 절단된 여자의 팔이 발견되는데 뜻밖에도 범인은 자신들이 저지른 연쇄살인 사실을 언론에 흘리며 경찰과 시민들을 조롱한다. 처음 범인들을 쫓는 이야기가 마무리되나 싶어면 다시 이야기는 오히려 범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야기가 바뀌면서 범죄드라마가 대하극처럼 펼쳐진다.
<모방범>은 섬세한 심리묘사가 가장 주된 특징이자 매력이다. 어느날 갑자기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의 가족들이 겪게되는 심리적 충격, 점차 비뚤어져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범죄자의 자기 분열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빠른 속도로 사건을 펼쳐나가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 솜씨가 일품이다. 분량이 3권 합쳐 1600쪽이 넘지만 끝까지 긴장감과 흡입력을 유지해나가기 때문에 죽죽 읽어나갈 수 있다.
미야베 이야기솜씨에 1600쪽 후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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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인기높은 추리소설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표지사진. 이 책은 2001년 일본에서 출간돼 모두 280만부가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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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보다 조금 먼저 나온 <이유>(청어람미디어 펴냄)와 <용은 잠들다>(노블하우스 펴냄)도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가운데 주요작들이다. <이유>는 사회적인 병리현상을 집요하게 다루는 미야베 미유키의 장기를 잘 보여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인사건을 통해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반면 <용은 잠들다>는 사물을 만지면 그 사물에게 일어난 일을 알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소년이 자신이 휘말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초능력을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시공사가 최근 펴낸 <팔묘촌>은 일본 추리소설사에서 전후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이다. 일본에서 1951년, 1978년, 1996년 세차례 영화로 만들어졌고, 6번 텔레비전 드라마로는 만들어졌을만큼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의 고전이다.
<팔묘촌>은 지난해 같은 출판사가 출간한 <옥문도>처럼 요코미조 세이시가 탄생시킨 명탐정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의 하나다. 긴다이치 스케(金田一耕介) 시리즈는 일본에서 6000만부가 팔려나간 일본 탐정의 대명사같은 캐릭터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탐정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주인공 김전일(金田一)의 할아버지로 설정된 그 명탐정이 바로 이 긴다이치 고스케다.
저주받은 전통마을 ‘팔묘촌’의 공포
<팔묘촌>은 참극이 되풀이되는 저주받은 마을 팔묘촌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긴다이치 탐정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공포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전통마을의 인습이 빚어내는 비극, 기묘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공포스타일 추리소설의 전형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요코미조 세이시로, <팔묘촌>이 그 대표격인 작품이다. 괴담풍의 이야기가 국내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지만 장르 특유의 코드로 즐기는 독자들에겐 그 자체가 매력이 되기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 좋고 싫음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뉘는 편이다.
<팔묘촌>이 고전의 의미가 강하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현대문학 펴냄)과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리고 이사카 고타로의 <사신 치바>는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란 점에서 요즘 일본 대중소설의 최신 흐름을 보여주는 소설들이다.
<용의자X의 헌신>은 요즘 추리물 답지 않게 전통적인 탐정을 연상시키는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교수가 등장한다. 비상한 머리로 사소한 단서 하나만 가지고도 범인의 머리를 꿰뚫어보는, 그러면서도 쉽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암시하는 말만 던지며 변죽을 울리는 교수 탐정이다. 마지막 트릭의 반전이 하이라이트란 점에서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감동도 함께 담고 있어 읽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란 평을 듣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복잡한 구성보다는 간결하고 명쾌한 구성을 선호하는 편이고, 범죄 이야기에 휴머니즘과 감성적인 드라마를 집어넣는 것이 특징이다.
엄밀하게 따져볼 때 전형적 미스터리와는 다소 다르지만 미스터리 구조를 따르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굳이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독특한 소설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여서 책 자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흥미로울만한 소설이다. 대부호의 저택에 모인 5명이 저택 안에 숨겨진 수수께끼의 책을 찾는 내기를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지의 작가가 단 200부만 찍은 책을 찾아가면서 그 속에 담긴 비밀과 사연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지은이 온다 리쿠는 모든 작품속에 사람의 마음 깊은 구석에 있는 노스탤지어를 깔아놓는데, 이 책에서도 무언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자극해댄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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