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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4 19:18 수정 : 2006.08.25 14:50

루가노 리포트-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방안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당대 펴냄. 1만3000원

“신자유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후진국에 분열·말살 조장해야”
시장경제 지키려는 가상보고서에 섬뜩한 현실이

I = C × T × P

(I :지구에 대한 충격. C :소비. T :테크놀로지. P :인구)

1996년 10월 정체가 모호한 ‘위임위원회’라는 조직이 “여러 학문분야에서 상당한 연구업적을 내고 있는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특별연구팀’에게 철저한 기밀유지를 전제로 한 모종의 계약이 성립됐음을 알리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1년 뒤인 97년 11월 9명의 특별연구팀은 위임위원회에 “오늘날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의 적나라한 실체를 규명해낸 집단은 특별연구팀이 유일무이하다”는 자부와 함께 보고서를 제출했다. 문제의 보고서에는 특별연구팀이 비밀리에 만났던 스위스 휴양도시에서 따온 <루가노 리포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고서는 먼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직면한 위험요소들을 지적한다. 폭발적인 생산력 발달로 생태계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며, 이윤극대화 추구속에 인간 복지와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해치는 성장제일주의가 횡행하고, 부의 편재와 사회 양극화로 패배자들이 양산되고 규제완화로 마약밀매·돈세탁 따위의 ‘깡패자본주의’가 번성하며, 수십조달러의 파생상품들이 광속도로 거래되는 상황에서 언제 대형 금융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다.

보고서는 이런 위기를 해결하는데 유엔과 국제결제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다국적기업 등을 통한 통제 등 어떤 방법도 문제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딜렘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바로 I = C × T × P 공식이다. 간단히 말하면 얼마만큼의 세계인구가 어느 정도로 소비하느냐가 지구 생태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결정하는데 소비자원의 생산·처리에 투입되는 기술 수준도 주요변수다.

보고서는 “프랑스 국민 1인당 평균소비는 이집트인 1인당 평규소비의 5.5배이며, 독일은 인도의 17배, 미국은 탄자니아의 35배가 넘는다”면서 이에 대한 도적적 분노나 소비 절약 또는 인도적 원조는 이런 격차를 해소하는데 아무 소용 없다고 지적한다. 환경충격이 덜한 저렴한 대안기술은 관련산업 분야의 다른 종사자들의 적의와 보복으로 도입이 불가능하며, 설사 도입되더라도 “전적으로 지구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인류전체의 ‘북아메리카나 유럽 중산층 수준’의 생활은 무망하다.

그리하여 보고서가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다. “최대다수의 행복과 복지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구상의 총인구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2020년의 목표는 현재 세계인구의 3분의 1을 줄이는 것, 즉 약 60억에서 40억으로 낮추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인구축소의 90% 이상을 후진국에서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서는 후진국의 패배자들, 즉 신자유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을 대거 말살할 계책들을 나열한다. 구매력 하락, 과도한 외채, 과도적 민주정부 등 불안정한 요소를 지닌 후진국들의 분열을 교묘하게 조장하고 무기거래를 부추기며 무역자유화 강요로 자작농을 도태시키고 곡물가격을 밀어올리는 한편 자연재해를 방치하는 등 위기를 불러일으키면서 한편으론 인도지원이라는 은혜를 베푼다. “50명의 인명을 구하는 모습은 5만명이 분쟁으로 제거되는 모습을 가려주는 커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대다수의 행복과 복지”란 결국 다국적기업, 초국적 자본이 대표하는 신자유주의 수혜자들의 행복과 복지일 뿐이다.

<루가노 리포트>는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다. 위임위원회와 특별연구팀도 가공이다. 6년간 국제그린피스 이사회에 복무한 적이 있는 저자 수전 조지가 “신자유주의로 알려져 있는 것의 파괴와 약탈행위와 관련해서, 이런 잔학무도함을 어떻게 격퇴시켜야 할지” 고민한 끝에 내놓은 허구다. 그러나 허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통계자료들은 사실이다. 이 정교한 허구를 읽으면 “현존하는 제도들로부터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섬뜩해진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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