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4 18:20
수정 : 2005.03.04 18:20
송영 소설집 ‘새벽의 만찬’
새벽 두 시의 어느 반지하 원룸. 더부룩한 외양의 사내와 작고 흰 강아지 한 마리가 둥근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빵을 나누어 먹고 있다.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엄숙하면서도 친밀감이 묻어 나는 이 장면을 이웃집 삼층의 창에서 젊은 여성이 내려다본다. 자동차 외판원인 주인이 나가 있는 하루 온종일 비좁은 다용도실에 갇혀 있어야 하는 강아지의 외로움과 배고픔, 새벽에야 귀가한 주인 사내의 강아지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 사정도 모르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의 부러움과 뿌듯함. 송영(65)씨의 소설집 <새벽의 만찬>(문학수첩)의 표제작은 세 주인공의 교차하며 뒤섞이는 감정을 한 컷의 인상적인 장면에 압축시킨다. 동일한 사건에 입회하는 각자의 처지와 느낌은 다르지만, 그들이 너나없이 외로움의 포로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소설집 <새벽의 만찬>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처럼 인간의 근원적 숙명이라 할 외로움을 향해 다채로운 무늬와 색깔의 촉수를 내벋어 보인다.
<미금역에는 무엇이 있나?>라는 작품은 외딴 아파트에 홀로 사는 은퇴자 ‘정씨’가 일과 삼아 행하는 작은 여행을 소재로 삼는다. 그는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인근 번화가인 분당 미금역 주변으로 나와 빵집과 기원, 식당 등을 순례하다가는 귀가하곤 한다. 의문문으로 되어 있는 소설 제목에 답을 하자면, 미금역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울림과 인간적 온기가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하루 치의 외출을 마감하고 돌아오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비어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놀람과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히는 것인데, 그 불이 외출하기 전에 자신이 실수로 켜 둔 것임을 발견하는 대목은 그를 괴롭히는 고독의 실체를 한결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염산의 은빛 종탑>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는 고향과 유년의 기억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오른다. 앞 작품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이 병에 따른 것이 아닌 자살이었다는 사실을 40여 년 만에 깨닫고, 뒤의 작품에서는 소년들의 우정을 파괴한 전쟁과 이념의 대결을 아프게 반추한다. 소설집에는 단편 일곱과 ‘미니픽션’ 여섯이 실렸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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