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6 16:34
수정 : 2005.03.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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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선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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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 커서 군대갈 날 기다리는 아들녀석이 어렸을 때다. 책을 많이 읽게 해야 훌륭한 부모가 된다고 하기에 꽤 많은 책을 사주었다. 이 녀석이 커가면서 말대꾸 할 때나 자기표현을 하는데 우격다짐으로는 아이를 다스릴 수 가 없을 정도로 말을 해대는 것이다. 전부 책에서 듣고 보았을 텐데 논리로나 표현으로나 당할 수가 없었다. 이게 커서 뭐가 되려고 해? 주둥아리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놈이 되면 어찌하나, 그러다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공든 탑 무너지고 신세 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는데, 괜히 책을 많이 사주었나? 하고 후회할 지경이었다.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숙제를 주었다.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을 다 뒤져서 ‘말’ 자가 들어가는 문구 200개 이상을 골라 적으라는 것이었다. 안하면 안되느냐며 온갖 핑계를 대면서도 며칠이 지나고 나서 숙제한 공책을 보여주는데, 속담, 격언 등에서 이미 90개나 적고 있었다. 그 말이 다 우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들이었다. 다 알면서 지키지 못하는 말, 말, 말…. 그래서 그런지 녀석이 커가면서는 조금씩 말을 조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떤가. 오히려 내가 어디가서나 말잔치에 열심히 끼어 들어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남보다 한마디라도 더하려고 허우적거리는 아줌마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말 잘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원이 얼마나 많은가? 말 잘하는 것은 귀한 능력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이왕이면 말 잘하는 게 낫겠지. 그런데 말을 많이 하기는 쉬워도 말을 잘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 많아질수록 쓸만한 말은 적어지면서 실수가 생기고,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동안 내가 한 말을 되새겨 보면 부끄러워져서 혼자 고개를 숙이며 반성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말을 하기 전에 2초 동안 잠시 멈출 걸, 또한 어리석은 척, 침착하게, 말 더듬는 것처럼 할 걸, 말을 아끼고 아낄 걸.
이선영 선도사(천도교중앙총부 교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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