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5 16:26
수정 : 2005.03.25 16:26
|
변신이야기
\
|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풍경 하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학교가 발표한 대학생 권장도서 목록에 모두 포함되는 책이 있다. 바로 서양 신화를 집대성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다. 지난해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도 뽑힌 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변신이야기>는 원전 완역본이 없었다. 권장도서를 읽기 위해 그동안 대학생들이 구입했던 <변신이야기>는 모두 중역한 것이거나 편역한 책들이었던 것이다. 권장도서를 선정한 대학 당국들이 과연 실제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을 검토는 하고 고른 것인지 궁금해지는데, 그만큼 이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좋게 해석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이 <변신이야기>의 우리말 완역본이 이제서야 처음으로 나왔다.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원전 고대 라틴어를 번역해 숲출판사에서 펴낸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변신이야기>는 이후 수많은 문학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서양 문화계의 ‘상상력의 원천’ 같은 책으로,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도 내용 일부가 실려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독서시장에 나와 있던 <변신이야기>들의 경우 운문임에도 독자 편의를 내세워 산문체로 바꾸거나 일부가 누락된 경우가 많았고, 또한 지난 2003년에는 가장 인기가 높은 번역본이 한국번역학회 학술대회에서 오역사례로 지적당하기도 했다. 이번 숲출판사판은 원본 1만1995행을 그대로 운문으로 옮겨 ‘시’의 느낌을 최대한 원전에 가깝게 살려 그런 아쉬움들을 털어냈다.
우리말 완벽본 처음 나와 그리스로마 신화의 근간
1만1995행으로 된 시 운문 느낌 그대로 살려
<변신이야기>는 지금부터 2000여년 전인 로마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대표적 시인 오비디우스의 시로, 그 이전 전해지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변신과 관련한 사물의 유래를 이야기한 모음이다. 천지창조부터 오비디우스가 살던 당대까지 250여가지의 변신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간이 되는 작품이다. 후대의 미술과 문학에 수많은 영감을 준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서양 중세 12~13세기 문화에 크게 영향을 끼쳐 이 시대를 ‘오비디우스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옮긴이 천 교수는 중역이나 편역이 판치는 출판풍토 속에서 원전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0여년째 그리스와 라틴 고전문학을 원전 번역하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지난해부터는 숲출판사에서 ‘원전으로 읽는~’이란 부제를 달고 시리즈로 그리스 라틴 고전을 펴내고 있다. 먼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아풀로도로스 지음)를,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로 이후 유럽 서사문학의 전범이 된 <아이네이스>를 펴냈다. 이번 <변신이야기>는 그 세 번째 책이다. 모두 그동안 수많은 출판사들이 중복출판한 고전들이지만 원전 완역본은 드물었는데, 직원 2명인 초미니출판사가 과감하게 펴낸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앞서 펴낸 두 책 모두 초판 2000부를 가뿐히 넘기고 재판을 찍어 인문서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보다 꼼꼼하게 신화와 고전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들이나 영문판을 읽던 고급 독자들이 호응한 덕분이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숲출판사쪽은 신화를 포함한 다양한 그리스 라틴 고전들을 계속 출간할 계획으로, 현재 천 교수가 옮기고 있는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와 <우정에 대하여>를 한 권으로 묶어 차기작으로 펴낼 예정이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