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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1 15:20 수정 : 2005.04.01 15:20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미시사 연구 첫 단추 노력 헛되이…

도서출판 길은 정통 인문, 학술 출판을 목표로 2003년 9월 제2의 창업을 시작한 아주 작은 출판사다. 출판사 대표를 포함해 직원이 단 둘! 그러나 도서출판 길은 지난 1년 6개월여 동안 착실하게 9권의 책을 펴내왔다. 우리는 책을 기획하는 가장 큰 원칙으로 책의 함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것은 최고의 필진과 최고의 번역을 통해 진정한 인문정신의 뜻을 고스란히 책 속에 담아내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가장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것저것 책을 펴내기보다는 출판사의 출판이념과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지적 대안 담론 형성에 필요한 책들을 엄선해서 출간한다는 기준도 세웠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고통이 따르게 마련인 것처럼 첫 단추를 끼우기는 무척 힘겨웠다. ‘역사도서관’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문화사와 미시사 중심의 역사서를 비롯한 국내외 연구자들의 책을 펴내기로 하고 서양사 전공자를 비롯한 다양한 역사분야의 선생님들과 의견교환을 가졌다. 아울러 문화사학회 정기학술대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하여 문화사의 연구동향을 파악하는 데 힘썼다.

그래서 냈던 첫 책이 <책과 혁명>(로버트 단턴 지음·주명철 옮김)이었고, 비교적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 두 번째 책으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를 내기로 했다.

우선 책을 선정하고 나서 번역자를 섭외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다. 이탈리아 역사학자라는 점과 미시사 분야의 책이라는 점이 번역자 섭외의 폭을 아주 협소하게 만들어버렸다. 다행히 조한욱 교수가 비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어 이탈리아어 번역이 가능했고, 각별히 유학기간 동안 이 책과의 독특한 인연(역자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이 있어 번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번역도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각별한 애정으로 혼신을 다해 해주셨다. 교정을 봐준 외부 편집자도 이 책에 대해 쏟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조한욱 교수조차 지금까지 만난 편집자 가운데 가장 믿음이 간다고 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조한욱 교수의 번역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좀더 완벽을 기하고 싶은 마음(이 점에 대해서는 조한욱 교수도 동감했다)에서였다. 역사의 우연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지만,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 필연적인(?) 우연이 뒤따랐다. 바로 저자인 긴즈부르그에게 오랫동안 공부를 했던 이경룡 선생을 알게 되었고 흔쾌히 이 책의 감수를 맡아주셨다. 아울러 이경룡 선생은 긴즈부르그에게 연락을 취해 가장 최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손수 찍어 보내게 했다. 책은 예상보다 세 달이나 더 늦어진 2004년 11월에 출간되었다(출판계에서는 출판사 초기에 책의 출간일정이 늦어지는 것을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나온 순간, 조한욱 교수를 만나러 십여 차례 이상을 왔다갔다 했던(나는 교정지를 손쉽게 우편을 통해 교환하지 않고 직접 원고를 갖다 드리고 받아왔다. 책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그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원대 교정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이미 <치즈와 구더기>로 유명해진 그의 책을 우리가 또 내기로 결정한 데에는 한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니, 미시사의 ‘출발점’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약관 27살에 집필한 미시사 연구의 첫 출발을 알렸던 세계적 수준의 명저인데도, 독자들로부터는 그리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에 쏟은 열정에 대한 믿음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이승우/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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