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5 17:55
수정 : 2005.04.15 17:55
전상국 소설집 ‘온 생애의 한순간’
소설가 전상국(65·강원대 국문과 교수)씨가 9년 만에 새 소설집 <온 생애의 한순간>(문학과지성사)을 내놓았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쓴 여섯 단편이 묶였다.
“시골(=춘천)에 있으면서 산에 다니고 야생화를 공부하고 농사도 지으며 동향의 선배 작가 김유정 기념사업 등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제 글에는 게을러졌네요. 그래도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강원도 홍천 태생인 전씨는 1985년 춘천으로 내려갔으며, 교직말고도 춘천 실레마을에 조성된 ‘김유정 문학촌’의 무보수 촌장 일을 보고 있다.
제법 오랜 시차를 두고 쓰여진 수록작들은 크게 ‘짝짓기’와 ‘실종’ 그리고 ‘소문’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로 나눌 수 있다. 2003년도 이상문학상 특별상 수상작인 <플라나리아>는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 플라나리아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 수록작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밝힌 이 소설에서, 실험실에서 발생한 플라나리아 실종 사건은 화자 ‘나’와 동거하던 여자 ‘그네’의 실종과 포개져 서술된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나’와 동거하던 ‘그네’가 어느날 문득 사라진 뒤 ‘나’는 혼란 속에서 짝짓기의 인류사적·생물학적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표제작 <온 생애의 한순간>은 <플라나리아>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적 상황 속에 풀어놓은 작품이다. 국토종합개발에 관여하는 남자와 곤충의 생태 사진을 찍는 여자는 서로의 작업 공간인 산에서 만나 가까워지지만 그들의 관계는 근본적인 한계 위에서 지속될 따름이다. 남자가 유부남인 까닭이다. “한순간을 얻기 위해 온 생애를 걸 수 있어야 한다”는 여자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거”라는 남자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은 끝내 파국으로 이어진다. 불가능해서 환상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물매화 사랑>과 <이미지로 간다>에서도 아련하게 그려진다.
<소양강 처녀>와 <실종>은 <플라나리아>와 함께 ‘실종’ 계열의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작가는 글쓰기의 방법론으로서 실종을 끌어들였다고 밝혔는데, <실종>과 <너브내 아라리> 같은 작품에서는 <아베의 가족>의 작가답게 분단 문제에 대한 여전한 천착을 엿볼 수 있다. <한주당, 유권자 성향 분석 사례>는 소문의 진위와 그 현실적 위력을 세태소설적 어조와 구성에 담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글·사진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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